[특파원칼럼]녹록치 않은 미국살이
2014-10-19 01:14
아주경제 워싱턴 특파원 홍가온 기자 =이민생활 7년째인 김 모씨는 처음 미국땅을 밟을 때만 해도 미국이 이 지경까지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김 씨보다 앞서 미국으로 이민간 선배들이 번듯한 집에 좋은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모습만을 듣고 봐왔던 터라 그도 그렇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2007년 초 공항에 내리는 그 순간부터 김 씨와 그 가족에게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일자리를 주기로 했던 직장에서 사장과 마주앉은 김 씨. 사장이 들이내민 계약서에 적힌 연봉 액수를 본 김 씨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초 약속했던 연봉보다 1만 달러나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김 씨보다 한 달 늦게 들어올 아내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미 먼저 다니던 한국의 직장은 사표를 내고 나왔으니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지경이다. 마침내 아내가 도착했고 김 씨의 말을 들은 그녀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한국에서 가지고 온 돈이 조금 있어서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쥐꼬리만한 월급으로는 다달이 뭉텅 뭉텅 빠져나가는 아파트 렌트비 대기도 빠듯했다.
결국 크레딧카드 빚은 쌓여만 갔고, 매달 공과금이다 뭐다 해서 돈을 내고 나면 통장은 마이너스. 급기야 아는 지인에게 힘들 때마다 돈을 빌려 구멍난 곳을 메꾸었다.
그나마 새로 옮긴 직장에서는 월급이 조금 올랐지만 빚내서 빚을 메꾸는 쳇바퀴 생활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2007년부터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미국의 경기침체기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직전에는 집을 살 때 다운페이 한푼 없어도, 크레딧 점수가 엉망이도 은행에서 손쉽게 모기지 융자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부동산 욕심이 유난히 많은 한인 이민자들은 별다른 수입이 없는 사람들까지도 집을 적게는 2-3채, 돈 좀 있다는 한인들은 많게는 10채까지 집을 사들였던 것이다.
그때만해도 쉽게 집을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몇 만 달러씩 껑충껑충 뛰었으니 '집 안사는 사람은 바보'라는 말을 들었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무리해서 집을 샀던 한인들은 지금 모두 엄청난 빚에 허덕이고 파산신청을 한 이들도 적지 않다. 셜과적으로 과한 욕심이 화를 부른 격이 되고 말았다.
최근 미국의 부동산 기업 리얼티트랙(Realty Trac Inc.)의 발표에 따르면 전체 미국인의 8분의 1, 즉 3800만명 정도가 가구당 소득이 적어도 10만달러(약 1억700만원) 이상이 돼야 해당 거주지역 중간 가격대의 집을 구입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말은 결국 여섯자리 숫자의 소득을 올리지 않는 이상, 살고 싶은 지역에서 자기 집을 소류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미국인이 3,800만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돈이 부족한 사람도 여기 저기서 융자를 받는 등 억지로 재정을 꾸려 집을 살 수는 있지만, 여섯자리 정도의 수입이 없다면 30년 모기지를 갚아 나가는 동안 연체를 피하기 위한 노력과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 미국 중간가구의 평균 소득은 5만3000달러에 불과하고, 전체 미국인의 3분의 1가량은 주택을 소유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동안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던 미국인들의 일일 지출액도 다시 줄기 시작했다. 좀 나아지나 싶었던 경기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여론조사기관인 갤럽에 따르면 올해 7월과 8월만 해도 평균 일일 지출액이 94달러 선을 유지했지만, 지난 9월에는 87달러로 떨어졌다.
이 설문조사는 '어제 지출액'을 묻는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어제 상점에서 구입한 물건들, 그리고 차량 연료비와 외식비, 온란인 결제대금, 선물비용 등 개인의 소비항목을 취합하게 된다.
보통 미국에서 9월은 여름방학이 끝나고 가을학기가 시작되는 일명 '백 투 스쿨' 시즌인데, 이 시기에 지출액은 다른 시기에 비해 크게 늘어나는 경향이 있는데 올해, 올해와 같은 감소 현상은 '이례적'이라는 분석이다.
이러한 전반적인 침체분위기 때문인 한인사회는 우울하다. 게다가 서브 프라임 모기지 당시 행해졌던 각종 불법, 편법 융자행위에 대한 단속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어 잔뜩 움츠러든 모습이다.
2014년도 거의 다 가고 있다. 이제는 가라앉은 미국 경기가 다시 일어나 모두에게 또다시 희망을 안겨줄 수 있는, 새싹이 움트는 봄 같은 시기가 앞당겨 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