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인사이드] '사인의 금지청구'

2014-10-12 23:50

[사진=경제부 이규하 차장 ]

아주경제 이규하 기자 =갑은 늘 을보다 우위에 서있다. 시장 경제에서도 거래 개체 간의 권력관계가 뚜렷하다. 가진 자와 못가진자, 진입자와 진입하려는 자 등 갑·갑, 을·을, 갑·을, 을·병 등이 시장에서 뒤섞여 권력 확대의 경쟁을 펼치고 정당한 가치를 교환한다.

기술과 혁신의 경쟁 및 동반협력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건전한 시장 경제는 이상적인 파라다이스인 듯하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갑을 관계 간 우월적 지위 남용 소식은 공정사회·공생발전 등 한국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가치 정착에 어두운 이면이다.

정부는 과거 모순투성이던 공정거래 사건처리를 거울삼아 지속적인 보완을 거듭하고 불공정 관행 근절 등 공정한 시장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다양한 접근방법 및 개선안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갑질 세계에서 을은 늘 목마를 수밖에 없다.

시장 환경에 탄력적으로 대응한 기업은 생존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기업은 몰락의 길을 걷는 것이 기업생리이나 을에게 기생해 뜯어먹는 갑의 횡포는 다르다.

남양유업 사태 등 ‘경제민주화’의 사회적 이슈가 한동안 뜨거웠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균형재정과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애쓰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민주화 종결 선언은 여전히 시기상조다.

신규순환출자 금지 등 몇몇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통과됐지만 을의 정당한 이해를 보호하고 억울한 피해를 배상받게 하는 권리와 보호장치는 여전히 부족하다.

횡포를 당한 을 기업들은 갑과의 힘겨운 싸움에서 힘의 논리에 또 한 번 좌절을 맛 본다. 2~3년이 넘게 걸리는 공정위의 행정처분 결과를 기다리기까지는 중소·영세기업으로써는 버틸 재간이 없다.

사업이 부도나기 전에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은 공정거래조정원을 통하는 것이지만 적극적인 중재 역할보단 화해 촉구가 강해 실효성 있는 피해 구제는 사실상 어렵다.

이 때문에 나온 것이 ‘사인의 금지청구제도’다.

현재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국회에 계류 중인 사인의 금지청구제도는 다른 현안들에 밀리고 기업 부담 가중을 우려로 지지부진한 형국이다.

사인의 금지청구권은 사인의 피해 구제를 위해 도입돼야한다는 논리가 작용하면서 국회에서 발의된 제도다. 공정거래사건의 피해자가 공정위 신고나 처리 결과를 기다리기 보단 법원에 위법행위의 신속한 중지(금지)를 청구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미국·일본과 달리 우리나라 공정거래집행은 공정위의 고유권한이다. 법원은 공정위가 고발하거나 처분한 내용을 토대로 옮고 그름 등 정당함과 부정당함만 따진다.

사인의 금지청구권이 도입되면 법원은 공정위의 판단 없이도 불공정 횡포에 대한 금지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사법상 권리로 공정거래법상 금지청구권이 인정되려면 여전히 숙제는 남는다.

권리의 주체·대상·불공정 방법 등 구체적인 정립이 필요한데다 적극적인 조사 권한이 없는 법원이 충실한 증거수집을 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미국은 독점금지법 위반행위로 인한 경쟁상의 피해만 금지청구를 할 수 있다. 일본도 1997년 독점금지법 내에 민사적 구제 검토를 시작으로 손해배상제도 등 피해자 구제수단을 충실히 담아 2000년대 결정됐지만 작위(作爲)와 관련한 견해가 엇갈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 제도가 인정된 사례도 한 건에 불과할 뿐 대부분 화해로 종결된 경우가 많다.

추후 우리나라의 경제민주화 종결 선언은 사인의 금지청구권 제도가 도입되는 시점으로 보는 이가 적지 않다. 경제민주화 관련 법 중 가장 마지막에 다룰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내실있는 연구와 공정위·법원 간 조화·융합도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