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마셜플랜' 주역 차이나머니, 경제위기 유럽 구원투수로 나서
2014-10-09 13:05
아주경제 배상희 기자 = 중국발 자본이 유럽으로 빠르게 유입되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재정취약국의 유수기업을 저가에 매수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중국 기업들이 공격적 인수·합병(M&A)에 나서면서 차이나머니는 심각한 경제위기로 돈줄이 마른 유럽 경제에 단비처럼 쏟아지고 있다.
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으로 중국 자본이 몰리는 현상을 두고 2차 세계대전 후 유럽재건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제공했던 미국의 마셜플랜에 빗대 '제2의 마셜플랜'으로 표현했다.
도이체방크 조사에 따르면 중국의 유럽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액은 유럽 재정위기가 발생했던 지난 2010년 61억 유로에 그쳤으나, 2년 뒤인 2012년 말에는 270억 유로(약 36조원)로 4배 이상 급증했다.
그 중에서도 2005년부터 현재까지 중국의 대이탈리아 누적 투자액 70억 달러 중 절반 이상이 올 상반기에 이뤄졌을 정도로, 최근 이탈리아에 대한 중국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은 올해 들어 중국이 이탈리아에 투자한 금액이 35억 유로에 달한다고 밝혔다. 2012년 말 기준으로 모두 195개에 달하는 이탈리아의 중·소규모 기업들이 중국이나 홍콩 투자자들에게 인수됐다. 이들 기업의 총 직원수는 1만 명에 달하며 총 수익은 60억 유로에 달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중국 국영 전력회사인 국가전력망공사는 지난 7월 21억 유로를 투자해 이탈리아의 국영 에너지 수송망 기업인 'CDP레티'의 지분 35%를 인수했다. 또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이탈리아 최대 석유기업 에니(Eni) 지분 2.102%, 전력청 에넬(Enel) 지분 2.071% 를 인수하기 위해 총 20억 유로를 투자했다.
중국 통신장비 제조업체 화웨이는 지금까지 이탈리아를 포함한 유럽 지역에 5억 유로를 투자했다. 화웨이는 2008년에 이탈리아 밀라노 외곽에 건립한 연구개발(R&D) 센터 규모를 2017년까지 2배로 확대하고, 고용 인력을 1700명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2010년에는 홍콩 리앤펑그룹이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세루티(Cerruti)를, 중국 첸장그룹이 이탈리아 고가 모터사이클 생산업체 베넬리를 인수했다. 또 중국의 불도저 생산업체인 산둥중공업은 2012년 명품 요트 생산업체 페레티(Ferretti)의 지분 75%를 1억7800만 유로에 사들였다.
포르투갈 또한 지난 3년간 매각한 92억 유로의 자산 중 45%가 중국 자본으로 흡수됐을 정도로 중국의 주요 유럽투자국으로 꼽힌다. 올해 초에는 중국 푸싱그룹이 포르투갈 최대 보험사 카이사세구로스 지분 80%를 10억 유로에 사들이기도 했다.
이밖에 중국 국영해운사 코스코는 그리스 피레우스항 지분 매입을 위해 협상 중이며 중국 선전공항 또한 아테네공항 지분매입을 검토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지난 15년간 시장과 노동력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노려왔고, 2010년 찾아온 유럽 재정위기는 유럽의 세계 유명 브랜드와 핵심 인프라 산업의 지분을 저가에 매수할 수 있는 기회를 중국에 제공했다.
특히, 중국의 대유럽 투자가 단기간 내에 급증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역외투자모델과 M&A 패러다임의 변화 때문이다.
중국의 해외 투자 방향은 개발도상국의 천연자원을 확보하는 것에서 선진국의 기술과 브랜드를 확보하는 것으로 바꼈고, 그간 중국 국영기업이 주도했던 해외 투자와 기업 M&A가 민간기업 중심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미국과 비교해 해외 자본의 국내산업 투자에 덜 엄격한 유럽의 기업환경정책 또한 한 몫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공격적인 중국의 해외 '투자러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탈리아 싱크탱크인 폴리시 소나의 프란체스코 갈리에티 창업자는 "중국이 유럽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갉아먹는 것인가"라고 반문하면서 유럽이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