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정몽구 vs 삼성 이건희, 1승1패...최후 승자는?
2014-09-19 15:47
용산역세권 패배 한전부지에서 설욕..박원순 서울시장이 최대 수혜
아주경제 김창익 기자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한전본사 부지에 10조5500억원을 베팅하면서 국내 부동산 개발사에 한 획을 긋게 됐다. 적어도 상당기간 이 정도 규모의 부지 매매는 없을 게 확실시된다.
정 회장의 베팅 액수는 내로라 하는 경영컨설팅 업체와 부동산 개발 전문가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전문가들은 누가 주인이 되든 땅값으로 5조원 이상을 쓰면 사업성을 담보하기 힘들다고 봤다. 정 회장이 써낸 가격은 이의 두 배다.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회장이 써낸 액수가 시장의 예상치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정 회장은 결과적으로 5조원을 헛쓴 셈이다.
부동산 투자의 셈법으로만 보면 정 회장의 이번 베팅은 0점짜리다. 향후 건설될 오피스를 평당 1억원에 분양해야 수지가 맞는다. 현재 도심 프라임 빌딩 오피스의 매매가는 평당 2500만원이 정점이다.
정 회장의 속내를 알 수는 없지만 이번 베팅을 사업적인 측면서만 생각하면 답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한 부동산 개발 전문가는 “정 회장은 한전 부지에 내집(현대차 사옥)을 짓는 것”이라며 “정 회장의 결정이 시장의 예측을 빗나간 것은 전문가들이 모두 분양 수익의 틀에 초점을 맞춰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의 이번 베팅을 정무적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경기 부양을 위해 재벌의 사내 유보금을 꺼내게끔 하려는 정부 시책에 정 회장이 통 크게 화답한 것이란 해석이다. 앞으로 개발 인허가 과정에서 서울시와의 협상을 손쉽게 이끌기 위한 포석이란 분석도 나온다. 부지의 40%와 수천억원의 취득세를 거두는 서울시 입장에선 이번 베팅에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정 회장의 베팅은 보다 큰 틀에서 철저히 수익성을 따진 셈이다.
정 회장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한국판 ‘아우토슈타트’를 만들기 위해 여러 부지를 물색해왔다. 대표적인 게 용산역세권 부지와 뚝섬 부지다. 하지만 번번히 부지 확보엔 실패했다.
이 중 용산역세권 부지에서 정 회장은 이건희 회장에게 트라우마가 있다. 부지 확보에 먼저 착수한 삼성쪽이 사업계획에서 앞설 것으로 예측, 현대는 2007년 사업자 선정 당시 7조8900억원이란 천문학적인 액수를 써냈다. 감정가 3조7900억원보다 4조원 이상을 떠 써낸 셈이다. 통큰 베팅으로 삼성을 누르려 했던 정 회장의 전략은 보란 듯 빗나갔다. 베팅에 보수적일 것으로 생각했던 삼성이 오히려 1100억원이 많은 8조원을 써낸 것이다. 용산역세권 부지에 이건희 회장이 한 수 위의 베팅을 한 셈이다. 1100억원의 근소한 차이로 패배를 맞본 정 회장은 통의 크기에서 첩보전에서 모두 이 회장에 졌다.
뚝섬 부지 확보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한강변 관리계획 때문에 무산됐다. 한강변에 초고층 개발에 부정적이었던 박 시장을 설득할 명분이 부족했다.
10조5500억원의 베팅으로 정 회장은 이건희 회장에겐 설욕을, 박원순 시장에겐 미소를 안겼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에 대한 설욕은 절반의 성공이다. 이 회장이 와병중이어서 이재용 부회장과의 승부였기 때문이다. 결과만 놓고 보면 이번 베팅의 최대 승자는 현대차와 삼성전자의 싸움으로 어부지리를 얻는 박 시장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