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역사의 압축판 '우암동'...특별기획 사진전 개최

2014-09-04 10:28
임시수도관 기념관 야외정원 일원에서 '시간 속에서 걸어 나온 우암동 사람들’ 기획

[사진=부산시제공]


아주경제 이채열 기자 =부산시 임시수도기념관(관장 성현주)은 11월 16일까지 기념관 야외정원 일원에서 ‘시간 속에서 걸어 나온 우암동 사람들’ 사진전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우암동은 부산항 끝머리인 7부두와 8부두 뒤편에 위치한 지역이다. 기념관은 부산 근·현대 역사 과정 속에서 가장 선명한 발자국을 남긴 우암동에 주목하고, 전시를 통해 지역사회에 대한 인식의 장을 넓혀보고자 이번 특별전을 기획했다.

이번 사진전은 20세기 역사 속 우암동의 변화상에 초점을 두고 그 속에서 삶의 궤적을 각인시켜온 주민들의 다양한 삶의 풍경들을 사진으로 담아내고 있다. 우암동 주민들의 앨범 속에 간직돼 있던 개인 사진을 비롯해 1959년 동항성당에 부임해 온 ‘하 안토니오’몬시뇰 신부가 애정 어린 시선으로 주민들의 삶을 기록한 사진 등 130여 점이 전시된다.

전시는 조선시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우암동의 역사적 변화과정을 크게 5개 부분으로 나눠 구성하고 있다.

첫 번째는 ‘소 바위 마을과 표민들의 집합처’이다. 조선시대 우암동은 앞 바다 포구 안에 소 같이 생긴 바위가 부산항을 굽어보고 있는 한적한 풍광을 지닌 마을이었다. 동래부 관할에 속해 있었으며 대륙과 바다를 연결하는 지리적 특성 속에 조선 연안에 표류하던 일본 어민들이 송환에 앞서 임시적으로 수용되던 ‘표민수수소(漂民授受所)’가 설치돼 있었다. 여기에서는 초량왜관 시절 부산항의 전경을 담고 있는 ‘조선부산포초량화관도’와 함께 2014년 부산항의 현재를 담은 사진이 전시된다. 일제강점기 이전 부산항의 원형 경관과 근·현대 시기의 급격한 변화를 통과해 온 현재 부산항 모습은 극명한 차이를 보이며 시간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힘을 실감케 한다.

두 번째는 ‘사라진 소 바위와 아까사끼(적기,赤崎) 우암동’이다. 일제강점기 우암동에는 ‘적기만매축사업(1934~1944)’으로 인해 앞 바다가 매축됐고, 조선 소 수탈을 위한 수출우검역소와 소 막사가 세워졌다. 바다 매축과정에서 우암포의 소 바위가 사라졌으며, 우암동이라는 고유의 이름은 일제의 식민공간화에서 비롯되는 ‘아까사끼’로 불리기 시작했다. 여기에서는 1909년 수출우검역소가 만들어지던 당시 우암동의 풍광과 검역을 마친 건장한 소들이 적기뱃머리 범선에 실려 나가는 사진이 전시된다.

특히 FP홀딩스 ‘김태영’ 대표(근대사료연구가, 49세)가 소장하고 있는 1909년 수출우검역소 개소 당시 적기뱃머리에서의 수출우 선적광경이 담긴 희귀엽서가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공개된다. 이 엽서는 대한제국 마지막 해인 1909년 수출우검역소(농림축산검역본부 전신)에서 발행한 것으로, 엽서의 오른쪽 상단 소의 머리 도안에 검역소 개소일인 ‘융희 3년(1909년) 10월 17일’이라고 쓰여 있고 왼쪽엔 대한제국 상징무늬인 이화(李花, 자두나무꽃)가 표현돼 있다.

세 번째는 ‘남겨진 소 막사와 피란민 마을의 형성’이다. 한국전쟁의 발발과 함께 부산은 가장 안전한 피란처이자 임시수도로 기능했다. 정부는 임시조치법을 발효시켜 부산 시내 곳곳에 마련된 40여 개 수용소와 공공건물에 전국각지에서 몰려오는 피란민을 수용했다. 우암동의 소 막사는 가장 많은 수용능력을 지닌 피란민 구호시설로 분류됐으며, ‘적기수용소’로 불리게 됐다. 이때 적기수용소에 들어온 피란민의 대다수는 이북 피란민들이었다. 소 막사 일대에 자리 잡은 피란민들은 막사 내부에 통로를 만들고 가마니, 이불 등으로 공간을 구분해 함께 살아갔다. 이들은 도로, 수도, 변소 등 기본적인 주거환경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곳에서 생활해야 했으며 물자부족, 질병, 화재 등으로 고단하고 힘든 삶을 살아야만 했다. 여기에서는 우암동 매축지 위 미군부대 ‘얌생이’로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왔던 피란민들이 고이 간직해 온 사진들이 전시된다.

[사진=부산시 제공]


네 번째는 ‘산동네, 달동네 우암동’이다. 한국전쟁 이후 우암동에는 다양한 공업시설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부산항의 수출입 물류유통이 확대되면서 우암동의 매축지 일대는 물류의 보관, 저장, 운송 작업을 수행하는 공간으로 급속하게 변해갔다. 우암동은 다양한 일자리가 넘쳐나는 곳이었으며, 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아 올라온 사람들이 가장 먼저 정착할 수 있는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 구릉으로 이뤄진 경사지 위 빈 공간에는 어김없이 이주민들의 판잣집이 들어차며 산동네, 달동네를 형성해 갔다. 여기에서는 1960~80년대 공장지대 우암동의 활기와 함께 생기 넘치는 주민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전시된다.

마지막으로 ‘우암동의 오늘’이다. 현재 우암동은 지역 내에 산재해 있던 공장의 쇠퇴와 2000년대 이후 지속된 재개발의 압력 속에서 다시 한번 변화의 지점에 서있다. 한편 공장이 떠나간 자리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입주하며 오래된 주거지와 대별되는 풍경을 만들어가고 있다. 여기에서는 2014년에 기록된 우암동의 풍경을 사진으로 보여준다. 늘어난 빈집 사이 골목에서 여전히 온기를 띠고 있는 다정한 주민들의 표정과 역사 속에서 형성된 다양한 주거지의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내고 있다.

이번 특별기획전은 우암동 주민과 동항성당의 ‘하 안토니오’몬시뇰 신부, FP홀딩스 ‘김태영’ 대표, 우암동에 소재해 있던 공장의 관계자들, 부산시 남구청, 부경근대사료연구소, 국사편찬위원회 등 여러 곳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또한 임시수도기념관이 개별적으로 발굴해 간 역사가 아닌 다양한 사람들과 기관이 참여해 우암동의 기억을 완성하고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근·현대 역사의 보고인 부산 곳곳의 수많은 지역 현장들이 다시금 주목받고 향후에도 꾸준한 관심으로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관람시간은 매주 화요일~일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관람료는 무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