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빅맨' 강지환, 솔직 혹은 발칙한 수다
2014-06-30 11:04
영화 '남자사용설명서' 최진원 작가와 드라마 '아가씨를 부탁해' 지영수 PD의 하모니가 '빅맨'의 기반을 탄탄히 했다면, 몰입을 높이며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끈 건 김지혁 역을 맡아 청렴한 청년을 연기한 강지환(37)이다. 데뷔 후 첫 주연을 맡았던 이다희와 첫 악역에 도전한 최다니엘, 연기 경력 5년에 불과한 정소민을 진두지휘하며 극을 책임졌다.
작품성과 흥행성,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강지환에게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가족은 내 심장만을 원했다'는 한 줄의 메인 카피 때문에 출연을 결심했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전개에 망연했고 3개월 동안 이어진 고된 촬영에 심신이 지치기도 했다.
"아시다시피 생방송 촬영이었어요. 마지막 촬영 대본이 너무 늦게 나왔는데, 엔딩보다 궁금한 건 대사량이었어요. 매니저가 대본을 가져오는데 첫 질문이 '신 많냐?'였으니까요."
때때로 찾아오는 멘붕(멘탈 붕괴를 줄인 말로 정신적 충격을 받은 상황을 뜻하는 신조어). 강지환은 작가와 감독이 당기는 줄에 무너지기 직전의 멘탈을 의지하며 자신을 컨트롤했다. 타이틀롤을 맡은 주연 배우가 치고 나가지 않으면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강지환은 모든 장면에 몸과 마음을 던졌다. KBS 월화드라마를 침체에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독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거다.
"제가 나서서 대본을 수정한 적도 있어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강하게 주장했죠. 작가님과 감독님을 설득했어요. 그렇게 바꿔 엉성하게 나오면 제 책임이잖아요. 그래서 더 심혈을 기울였던 것 같아요. 다행히 작가님이랑 감독님도 만족해 하셨고요."
"나는 시청률에 연연하는 배우다"라고 말하는 강지환은 누구보다 솔직했다. 연기하는 이유가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라고 힘주어 말한 그는 이왕이면 한 명이라도 더 행복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 좌표가 시청률이라고도 했다. 자신의 신념에 대해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목소리에 열정 어린 진심이 묻어났다.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고 오롯이 즐긴다고 말하는 배우들 때문에 딜레마에 빠진 적이 있어요. 과연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는 배우가 맞을까 싶었죠. 그런데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거예요. 내가 연기를 하는 이유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인데, 사람들이 보지 않는 연기를 하는 건 배우로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웰메이드 드라마와 막장 드라마 중에서 선택하라면 시청률이 보장되는 후자를 택하겠다는 강지환이 선택한 최고의 작품은 첫 주연작이었던 '굳세어라 금순아'도, 타이틀롤을 맡았던 '쾌도 홍길동'도 아니었다.
"2006년에 '90일 사랑할 시간'이라는 드라마에 출연했어요. 첫 방송 다음 날 아침에 김하늘 씨한테 남자주인공이 시청률 확인도 안 하고 뭐하냐고 혼났었죠, 하하. 종영파티 때 엄청 울었어요. 배우 만들어 줘서 고맙다고요. 그때 처음으로 후유증이라는 걸 겪었어요. 제 이름 앞에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은 첫 작품이에요."
김하늘, 정혜영, 강지환이 만들어낸 시청률은 4.4%(닐슨코리아 기준·이하 동일)로 저조했지만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웰메이드 드라마로 남아 있는 '90일 사랑할 시간'. 시청률에 연연한다는 그가 선택한 작품이 이것이라니, 모순아닌가.
"12년 전의 저와 지금의 저는 달라요. 무명일 때는 대사를 원했고, 대사가 있으면 비중이 높았으면 좋겠다 했어요. 주인공 자리에 앉으면 스타가 되기를 원하는 게 사람이죠. 세월 속에서 오는 변화가 배우라는 직업에도 있죠. 저를 배우 자리에 앉혀 준 건 '90일 사랑할 시간'이지만 저를 보고 작품을 선택한 시청자의 시간을 뺏고 싶지 않아요. 그게 제가 시청률에 연연하는 이유입니다."
마지막 방송 시청률(12.6%)을 확인하고 그동안 묵혀 있던 스트레스가 눈 녹듯 녹았다는 강지환은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휴게소를 들렀다가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행복할 것 같다고. 전 소속사와의 전속계약 분쟁 후 주인공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았다는 강지환은 잠깐의 휴식 후 다시 달릴 것이다. 더 멀리, 더 높이 날아오를 그의 내일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