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시총 5조 상장, '한국의 잡스' 꿈꾸는 IT영웅
2014-06-15 14:11
창업3년만에 일간 클릭수 5천만건 사이트 성장, 방우마이 윤여걸 대표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최근 중국 네티즌들을 열광시키고 있는 ‘핫(hot)’한 사이트인 방우마이(帮5买, www.b5m.com). 우리나라의 ‘네이버 지식쇼핑’과 비슷한 기능의 쇼핑검색 사이트다. 방우마이에서 ‘갤럭시 S5’를 검색하면 톈마오, 타오바오, 징둥, 이하오뎬 등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되고 있는 갤럭시 S5의 가격과 제품설명이 일목요연하게 뜬다. 소비자는 단 한 번의 검색으로 각 사이트들이 판매하는 제품에 대한 가격비교를 할 수 있다. 게다가 방우마이는 가격 추세와, 각 사이트의 우대혜택도 함께 보여줘 소비자의 합리적인 쇼핑을 돕는다. 지난달 방우마이 사이트의 일간 방문자수는 800만명, 하루 클릭수는 5000만건에 달했다. 방우마이는 현재 중국 전체 사이트 중 클릭수 기준으로 60위권을 달리고 있다. 회원수만 무려 6000만명이다.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방우마이의 설립자는 뜻박에 한국인이다.
방우마이 신화의 주인공인 윤여걸 대표는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꿈꾸고 있는 'IT 영웅'이다. 윤 대표는 “2016년도면 방우마이는 매출 1500억원에 순이익 300억원의 IT기업으로 성장해 있을 것”이라며 “그때 즈음 나스닥에 상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상장이 성공한다면 시총 5조원은 거뜬히 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인터넷기업들이 미국시장에 상장하면 주가수익비율(PER)이 상상외로 높다. 중국시장의 향후 가능성이 어드밴티지로 작용한다. 현재 상황으로 볼 때 방우마이는 흑자기업이며, 쇼핑검색시장 1위 사이트인 만큼 시총 5조원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업계관계자들의 반응이다. 계획대로 된다면 그의 중국시장 도전은 그야말로 대성공을 거두는 셈이며, 우리나라 벤처기업 역사에도 한 획을 긋게 된다. 하지만 그의 꿈은 ‘5조원짜리 IT기업’을 넘어 더욱 높은 곳에 있다.
◆31세에 7억달러 벌었지만 도전 지속
그의 열정적인 도전은 20여전 전부터 시작됐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89학번인 윤대표는 학부를 졸업한 후 1993년 미국 스탠포드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스탠포드대에서 컴퓨터과학과 석사를 취득한 그는 실리콘 밸리로 건너갔고 1998년 가격비교 사이트인 '마이사이먼'을 세웠다. 마이사이먼은 대단한 성공을 거뒀고, 2년후 나스닥 상장기업인 시넷에 무려 7억달러에 매각됐다. 당시 그의 나이 31세였다. 큰 돈을 번 그는 1999년에는 미국 '와이즈넛', 이듬해에는 '코리아 와이즈넛'이란 검색솔루션 업체를 세웠다. 2004년에는 다시 미국에서 가격검색 전문사이트 '비컴닷컴'을 세우고 매각했다. 창업 때마다 글로벌 투자사로부터 적게는 1000만달러에서 많게는 3700만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그는 “미국은 경쟁이 너무 치열하고 인터넷산업 발전속도가 너무 빨라 기회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며 “더욱 큰 성공을 위해 노력을 했지만 미국에서는 비전을 찾기 힘들었다”고 소개했다. 2005년에 일본에서 ‘비컴재팬’이라는 사이트를 창업했다. 일본은 미국보다 경쟁은 느슨했지만, 시장규모가 작아 발전의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그가 눈을 돌린 곳이 중국이다. 중국에서 도전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그는 2007년 태어나 처음으로 중국땅을 밟게 된다. 중국어 한마디 못했고, 친구 한명 없었다. 이미 큰 성공을 거둔 상황에서 현실에 안주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생면부지의 땅에서 본인의 실력을 밑천으로 과감한 도전을 행했다.
◆고난끝에 꽃피운 '차이나드림'
그는 2007년에는 중국 상하이에서 짜이신(載信)소프트웨어유한회사를 설립했다. 기업용 검색엔진사업을 시작했으나 중국의 기업문화는 그가 겪어온 세상과는 천양지차였다. 기업들이 소프트웨어를 돈 주고 사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라 기업용 검색엔진 시장은 불투명했다. 3년의 개발기간을 거친 뒤 2010년 한해 마케팅과 세일즈에 전력을 다했으나 결과는 참패였다. 쓰디쓴 실패를 맛봤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윤 대표는 “외국에서 주로 사업을 하다 보니 나의 실패가 모든 한국인들이 무능력으로 치부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포기를 할 수 없었다”고 회고한다. 마음을 다잡은 그는 인터넷쇼핑몰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현실에 착안해, 사업의 방향을 쇼핑검색으로 과감하게 틀었다. 1년여 연구끝에 만든 사이트가 방우마이다.
2011년 설립된 방우마이에게는 이타오(一淘)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있었다. 이 밖에도 크고 작은 쇼핑검색업체가 난립해 있었다. 소비자들에게 방우마이라는 사이트는 생소했다. 하지만 윤 대표의 기술력이 응집된 방우마이 사이트는 그 기능이 빠르고 디자인이 세련됐다. 방우마이의 가능성을 눈여겨본 실리콘 밸리의 벤처캐피탈은 2012년 7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중국의 벤처캐피털사 및 미국 투자자 등으로부터 총 1600만 달러 규모의 추가투자를 받았다. 그는 이미 충분한 재력을 지니고 있는 만큼 타인의 투자를 받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는 “제3자가 투자할 때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며 “주주들의 견제는 CEO의 아집과 독재를 막을 수 있고, 주주들의 아이디어와 조언들은 성공가능성을 더욱 높인다”고 말한다. 시장에서 저력을 인정받던 방우마이는 2013년 하반기부터 급격하게 팽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는 일간 클릭수 5000만건의 대형 사이트로 변모했다.
◆6년의 노력과 실패가 밑거름
현재 방우마이 본사는 상하이(上海)에 있다. 베이징(北京)과 항저우(杭州)에도 사무실을 개설해 놓았다. 방우마이가 보유한 3억 개 이상의 제품데이터는 중국 가장 중요한 6000여개 B2C사이트와 200여개 공동구매사이트에서 획득한 것이다. 직원은 현재 250명이다. 모두다 중국인이고, 한국인은 윤대표 1명이다.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중국어 실력은 이제 현지인과 자유자재로 토론하고 중국어 보고서를 자연스럽게 읽는 수준이 됐다. 방우마이가 취급하는 상품은 여행, 금융상품, 대출, 주택, 보험까지 확대됐다. 향후에는 자동차판매까지 뛰어든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성공에 대해 윤 대표는 “바깥에서 볼 때 회사가 갑자기 성장한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6년동안의 노력과 실패의 경험, 포기하지 않은 집념이 깔려있다”며 “이에 더해 중국의 인터넷쇼핑 사업 확장이라는 ‘시운’을 만난 것도 성공요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또한 경쟁회사가 자본부족과 기술력부족으로 도태된 것도 방우마이의 성공가도에 길을 활짝 열어줬다. 현재 유일한 경쟁자인 이타오는 알리바바 산하 기업으로 그룹 계열사 쇼핑몰에 서비스가 집중되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검색의 범위나 공정성, 신뢰도 면에서 이타오를 앞서있기에 방우마이가 1위업체로 올라설 수 있었다는 것.
◆타오샤 론칭 “한국에 기여할 것”
방우마이는 지난달 중국 소비자들이 한국, 일본, 미국 등 해외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타오샤(tao.b5m.com)’를 론칭했다. 방우마이가 쇼핑검색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타오샤는 직접 구매가 가능한 인터넷쇼핑몰이다. 타오샤는 패션, 뷰티, 생활용품, 가구, 식품, 의료, 여행 등 다양한 카테고리로 구성돼 있으며 현재 한국 상품을 중심으로 입점되고 있다.
타오샤에 입점하는 한국상품은 일간 방문자 800만명을 자랑하는 방우마이 사이트와 연계마케팅이 가능하다. 중국 내 브랜딩이 필요한 기업에게는 통합마케팅 컨설팅 및 대행서비스를 제공한다. 윤 대표는 “한류 바람을 타고 한국상품에 대한 중국내 호감도가 급속히 높아졌다”며 “많은 한국기업들이 방우마이를 이용해 중국에 진출해 성공하기를 원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상하이자유무역구에도 법인 등록을 했고, 저렴하고 빠른 물류망을 구축하기 위해 별도의 인터넷플랫폼을 준비하고 있다. 인터넷마케팅 뿐만 아니라 기업인증 대행이나, 통관대행 등의 서비스를 통해 우수한 한국제품들을 더욱 많이 중국에 끌어오겠다는 것.
◆IT영웅이 말하는 벤처정신
그는 벤처기업에 도전하려는 젊은이들에게 “도전정신과 함께 집념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윤 대표는 “어렵지 않은 사업은 도전할 의미가 없다”며 “어려움을 자기발전의 계기로 삼고 도전을 먹고 사는 것이 벤처정신”이라고 힘을 줬다. “집념이란 몸도 마음도 지쳐 더 이상 매달리기 어렵다가도 그 다음날 다시 새롭게 전력을 다하게 만드는 정신”이라는 그의 말에 ‘한국의 스티브 잡스’라는 그의 비전이 현실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