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입만 열면 "안전..안전"…자고 나면 "대형사고"
2014-05-28 16:51
지하철 상황십리역 추돌 400여명 부상,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8명 사망 등 잇따른 인재에 국민들 집단 트라우마
아주경제 최수연·박성준 기자 =지하철 상왕십리 추돌(5월2일), 경기 고양종합터미널 화재(5월26일), 전남 장성요양원 화재(5월28일)…. 자고 일어나면 안전사고다. 세월호 참사(4월16일)후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 재계까지 한목소리로 안전관리를 외치지만 잇따른 인재(人災)에 공염불이 되고 있다.
정부는 국가안전 컨트롤타워로 국가안전처 신설하는 등 정부조직 체계를 뜯어고치겠다는 계획을 밝혔고, 6·4 지방선거 후보들은 하나같이 '안전국가' 만들기에 적임이라고 자처하고 나서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회 전반에 만연된 안전불감증 문제를 맨 밑단부터 해결하지 않고는 이같은 노력이 일종의 선언에 그칠 수 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28일 발생한 요양원 화재 사건은 이같은 주장을 뒷바침하는 대표적인 인재다. 이날 0시27분께 전남 장성군 삼계면 효실천사랑나눔요양병원(이하 장성요양원) 별관 건물 2층에서 불이나 입원환자 20명과 간호조무사1명(오후 3시 기준) 등 21명이 숨지고 8명이 부상했다.
부상자 8명중 6명은 중태여서 사망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화재 후 4분만에 소방차가 도착해 이후 2분만에 큰불을 잡는 등 진화작업은 비교적 빨리 이뤄졌지만 2층에 입원해 있던 34명의 환자 중 20명과 당직을 서던 간호조무사 한명이 질식해 사망했다. 대부분 70~90세 중증 치매·중풍 환자로 일부는 침대에 손이 묶여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거동이 불편한 노인 환자의 구호에 대한 대비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고는 특히 세월호 참사 후 정부가 안전점검을 실시한 후에 발생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안전점검 자체가 부실했다는 증거기 때문이다.
전남도는 세월호 참사후 위기 관련 매뉴얼 현장 작동 여부 확인점검에 나서, 요양원 자체점검(9일)과 장성군 현지 점검(21일) 등 두 차례에 걸쳐 안전점검이 이뤄졌다. 이번 화재는 장성군 점검 이후 일주일 만이고 고양종합터미널 화재로 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지 이틀만이다.
요양원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 사고가 반복되는 것도 정부의 안전관리 강화 조치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2010년 11월 경북포항 노인요양원에서 불이나 10명이 목숨을 잃었다. 피해자들이 모두 70대 이상 중증 치매·중풍 환자들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장성요양원 사고와 판박이다. 그 사이 안전관리 강화 조치가 이뤄졌다고 하지만 21명의 사망자 수가 말해주듯 비상 시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는 실질적인 대비책들이 마련되지 못했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안전점검을 수박 겉할기 식으로 했다는 사실이 이번에 제대로 드러났다. 일선 공무원들의 안전 불감증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화재가 발생하면 어디로 어떻게 대피를 하는지 등을 점검했어야 하는데 점검에 대한 구체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와중에 세월호 참사 후 국회에서 발의된 수십건의 안전 관련 법안들이 지방선거를 앞둔 정쟁에 밀려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각당 후보들의 안전 관련 공약들이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이유다.
국민들은 반복되는 안전사고에 일종의 집단적인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겪고 있다. 지난 2일 상왕십리 지하철 추돌로 4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데 이어 이날 오전 10시50분께 지하철 3호선 도곡역에서 화재 사건이 발생했다. 앞서 9시6분께 동대문 홈플러스 주차장에 세워진 한 차량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 소식을 접한 직후다.
역무원의 조치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뉴스를 접한 시민들은 2003년 2월 발생한 대구 지하철 참사를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헤드헌팅 업체를 운영하는 김모(43·여)씨는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지하철 화재 소식을 접하고 또 하나의 대형 참사가 나는 게 아닌지 놀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