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베트남 딜레마, “조선산업 참여해야 하나?”
2014-05-27 15:44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베트남 현지에서 삼성중공업의 자국 조선소 인수설이 확산되면서 삼성그룹도 고민에 빠진 모습이다.
현지 투자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 삼성에 대해 베트남 정부가 대승적인 차원에서 결정해 줄 것을 바라는 간청에 가까운 요구인 셈인데, 공을 떠넘기려는 듯한 분위기를 받기도, 버리기도 어려운 상황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 현지 언론 보도 및 관련 업계에 따르면, 베트남 정부는 최근 국영 조선소인 베트남조선산업총공사(SBIC, 구 비나신 그룹) 산하 자회사인 깜라인만(Cam Ranh Bay) 소재 조선소의 지분 최대 50%를 삼성중공업이 인수하는 방안을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응우웬 홍 쯔엉(Nguyen Hong Truong) 베트남 교통부 차관은 “삼성중공업이 ‘할룽(Ha Long) 조선소의 인수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베트남 정부 고위 관계자가 삼성의 자국 조선산업 구조조정 참여를 공개적으로 거론한 것은 황 쭝 하이(Hoang Trung Hai) 베트남 부총리에 이어 두 번째다. 특히 베트남 정부는 삼성그룹측에 조선산업 구조조정에 동참해 줄 것으로 제안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이에 대해 당사자인 삼성중공업은 “해당 기사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자사명이 반복돼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으며, 삼성그룹측도 같은 의견을 전했다.
문제는 단순히 삼성중공업이라는 개별 기업의 투자 유무 여부로 판단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베트남 정부가 삼성에게 매달리는 근거는 지난해 9월 체결한 포괄적 양해각서(MOU)다. 이를 통해 삼성은 우선 순위사업에서 베트남과 상호 협력키로 했는데, 협력대상 사업에는 전력·도시개발·공항·공공분야 정보통신사업 등과 더불어 조선업도 포함됐다. 당시 업계에서는 삼성그룹의 향후 대 베트남 투자액은 기 투자한 58억 달러(6조2400억원, 투자 승인분 포함)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베트남에 공을 들이는 배경은 ‘포스트 차이나’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미 10년여 전부터 삼성은 대중국 투자 쏠림현상으로 인해 자칫 벌어질 수 있는 중국의 정치적·경제적 변화에 대한 충격을 줄이면서 아시아 지역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후보 국가를 물색해 왔는데, 가장 적임국가로 베트남을 지목했다. 삼성전자가 중국이 아닌 베트남에 세계 최대 규모의 휴대전화 공장을 건설한 이유도 사실상 중국에 대한 견제의 성격이 강하다.
삼성전자를 필두로 삼성전기와 삼성물산, 삼성에버랜드 등이 베트남에 진출했으며, 다른 계열사들의 참여도 늘어날 전망이다.
베트남 정부는 삼성의 자국 투자와 관련해 상당한 수준의 세제혜택 및 인센티브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향후에도 이러한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공공부문 개선사업에 삼성의 참여, 특히 베트남 정부가 가장 시급히 처리하고 싶어하는 SBIC 인수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SBIC는 베트남 전체 조선 조업물량의 약 70%를 담당했던 최대 조선업체였지만 방만경영과 임직원들의 부정, 비효율적인 운영 등이 겹쳐 파산 직전까지 갔다. 이 여파로 베트남 국가경제가 흔들리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해외 매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하고 있지만 회사의 사정이 좋지 않아 투자 유치에 애를 먹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삼성중공업도 최근 수익성이 악화된 상황에서 SBIC를 떠안기에는 부담일 것”이라면서, “그렇다고 ‘안된다’고 결정내리면, 자칫 베트남 정부의 눈 밖에 나 다른 계열사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삼성으로서는 결정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