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이주열식 인사 앞두고 뒷말 무성…'조직안정 어디갔나'

2014-05-13 17:09

아주경제 이수경 기자 = 지난달 1일 이주열 신임 총재를 맞이한 한국은행의 분위기가 몹시 어수선하다.

부총재가 임기를 남겨두고 중도 사퇴한데 이어 조만간 간부급을 중심으로 인사태풍이 불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중수 전 총재의 조직 개혁을 비판했던 이 총재가 결국 똑같은 방식으로 조직을 흔들려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박원식 전 부총재가 지난 9일 사표를 제출하면서 한은의 후속 인사가 당초 예상보다 빨라질 전망이다.

박 전 부총재는 내년 4월까지 임기가 남아있었다. 당연직 금통위원인 부총재를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한 2004년 이후로 중도 사퇴는 처음이다. 본인 의사에 따라 퇴임식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총재가 취임하면서부터 이같은 상황은 사실상 예견된 일이었다는 분석이다. 박 전 부총재를 비롯해 한은의 주요 임원들은 대부분 김중수 전임 총재의 파격 인사로 발탁된 인물이다. 이 총재가 취임사에서 조직 개편 의지를 밝힌만큼 부총재의 사퇴는 본격적인 '이주열식 인사'의 신호탄으로 풀이된다. 

한은은 2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정기 인사와 보완 인사를 실시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기를 앞당겨 6월까지 후속인사가 마무리될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폭에 대해서는 통상적인 수준일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총재가 최근 언급했던 통일연구부서 등 신설을 앞두고 있는 조직이나 소통 강화를 위한 커뮤니케이션국의 역할 조정 등의 변화가 예상된다.

한은 관계자는 "근무 연수만 따지더라도 1급 국ㆍ실장의 대부분은 현 직무를 맡은 지 2년이 지났다"면서 "통상 2~3년 후 이동하는 것을 감안하면 옮길 때가 됐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소위 '김중수 키즈'로 분류되는 주요 국장급과 부총재보 인사의 방향을 놓고 벌써부터 한은 안팎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임 총재의 핵심 인물로 꼽히던 부총재가 사퇴한만큼 부총재보들도 사퇴 수순을 밟지 않겠느냐는 추측도 꾸준히 흘러나온다.

현재 5명의 부총재보 중 김준일ㆍ강준오ㆍ강태수 부총재보는 임기가 내년 4월까지다. 지난해 부총재보로 임명된 허재성ㆍ서영경 부총재보는 2016년 7월 임기가 만료된다. 이들을 비롯해 전임 총재의 파격 인사로 고속 승진한 주요 부서장들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김중수 전 총재는 한은 총재로 취임한 후 인사를 통해 소위 '이성태 키즈'로 꼽히던 핵심 인물들을 줄줄이 좌천시키면서 한바탕 논란을 빚었다. 이주열 총재도 부총재 임기를 끝내고 한은을 떠날 당시 김 전 총재의 인사를 두고 "한은 고유의 가치와 규범을 하루아침에 부정한 것"이라며 비판했다.

이 때문에 이번 인사에서 이 총재가 본격적으로 전임 총재의 색깔 지우기에 나서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부총재보의 중도 사퇴가 현실화될 경우 임기제가 유명무실해지는 데다 실적과 평판을 평가기준으로 삼는다던 총재의 원칙을 스스로 뒤집는 꼴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은 출신 총재의 취임으로 조직 안정을 기대했던 내부 구성원들은 "대체 외부 출신 총재와 다른 것이 무엇이냐"는 자조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김 전 총재가 자기 사람들로 핵심 부서를 채웠던 것과, 이 총재가 전임 총재의 사람들을 솎아내는 것은 결국 조직 분위기를 흐린다는 측면에서 보면 동일하다"면서 "인사를 놓고 잡음이 계속 나오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편 박 전 부총재의 후임으로는 이전에 부총재보를 지낸 바 있는 장병화 서울외국환중개 대표이사와 김재천 한국주택금융공사 부사장, 이 총재의 청문회 준비를 총괄지휘했던 이흥모 경제연구원 국장 등이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