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인터뷰] 김대우 감독 "송승헌과 한석규·김주혁의 공통점은…"
2014-05-08 16:34
영화 ‘정사’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의 각본을 썼던 김 감독은 ‘음란서생’ ‘방자전’에 이은 신작에서 송승헌의 묵은 이미지를 벗겨냈다. 송승헌은 1969년을 배경으로, 같은 관사를 쓰는 부하의 아내 종가흔(임지연 분)에게 중독된 대령 김진평을 통해 역대 최고의 깊이로 감성연기를 분출했다. 월남에서 살아 돌아온 자의 고뇌 또한 그의 몫이었다.
지난 2일 서울 논현동 카페에서 만난 ‘인간중독’의 주연배우 송승헌은 “영화를 마친 지금에서는 정말 하길 잘했다”고 흡족함을 감추지 않았다.
“지난 20년간 제가 만든 이미지의 울타리 안에 저를 가둬 왔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훈훈하고 선한 남자 이미지요. 김대우 감독이라면 이제껏 보여드리지 못한 저의 매력을 끄집어내 주실 수 있는 분이라 믿었고, 그래서 나름대로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해 봤습니다. 평가는 관객이 해 주시겠지만요.”
김대우 감독은 ‘음란서생’의 김민정, ‘방자전’의 조여정 등 여배우의 숨겨져 있던 아름다움을 부각시켜 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김진평이 종가흔에게 중독됐듯, 송승헌의 변신에도 관객이 임지연이라는 배우에게 매료되는 건 아닐까.
“글쎄요, 그런 조바심은 없습니다. 영화를 보시면 저 남자의 사랑에 고개를 끄덕이실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저 사람이 아니면 숨 쉴 수 없는 김진평의 사랑이 타협 없이 전장을 누빈 그의 삶과 맞아 떨어지거든요. 제가 했던 어떤 작품보다 가슴 아픈 사랑을 한 인물이에요. 관객 분들도 김진평의 그런 마음, 사랑이 눈에 들어오시리라 생각합니다.”
자리를 함께한 김 감독 역시 송승헌의 연기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송승헌이라는 물감으로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에 입증되지 않은 캐스팅을 했는데, 송승헌이 제대로 색을 내주었다는 호평이었다.
“김진평이 군인임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도 작고 내성적이죠. 남성스러움에서 남성미를 구축하는 게 아니라 내성적 성격에서 나오는 남성미를 그리고 싶었어요. 송승헌이라는 배우가 조용하고 우울한 모습을 연기하면 좋겠다 싶었는데 제대로 해 줬어요. 양지만 있는 남자한테서는 매력 못 느끼지 않나요, 비만 오는 남자도 마찬가지고요. 대체로 그늘이 있는 남자가 남성적이라고 보는데, 송승헌이라는 아름다운 피조물에 그늘까지 덧씌워 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고 결과에 만족합니다.”
김 감독의 칭찬은 스크린 밖의 인간 송승헌에게로 이어졌다. 극찬이었다.
“제가 소소하다 못해 이상한 주문들을 했어요. ‘나, 송승헌이야’ ‘왜 이러세요’ 식으로 반응하지 않고 받아들여 주고 고민해 준 게 좋았습니다. 제가 의도한 건 아닌데 한석규(음란서생), 김주혁(방자전)과 더불어 세 사람의 공통점이 있어요. 인생을 올바른 방향으로 가꿔 가고자 하는 사람, 인격을 중시하는 사람들이라는 거죠. 제가 어떤 근거를 가지고 캐스팅한 건 아닌데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려는 사람을, 그런 배우를 본능적으로 좋아하고 화면에 담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김 감독은 특별히 송승헌에 대해 “제가 승헌 씨를 ‘아름다운 피조물’이라고 표현했는데 외양에 불과해요,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려는 그의 노력에 비하면요. 쉬워 보이지만 어려운 일이에요. 그럼에도 20대 송승헌보다 30대 송승헌이 더 나은 사람, 30대보다 40대가 훨씬 나은 사람, 50대에는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는 것을 감히 말씀드립니다. 이것이 배우 이전에 인간 송승헌에 대한 총평입니다”라고 강조했다.
감독의 말끝에 “감사합니다”라고 고개를 숙이는 송승헌에게 김대우 감독의 연출 스타일을 물었다.
“인격적으로나 인간적으로 고개가 숙여지는 분이에요. 말 그대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니셨는데요. ‘인간중독’이라는 배의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선장으로서 한 번의 트러블 없이 촬영을 마쳤어요. 저런 게 카리스마이고 리더십이구나, 표본처럼 다가왔습니다. 나도 나이 먹으면 저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했고요. 배우, 감독을 떠나 인간적으로 오래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서 정말 감사해요. 기본적으로 제가 넓은 인간관계보다는 좁게, 좋은 사람을 오래 보는 스타일인데 그렇게 계속 뵙고 싶은 감독님을 만나 기쁩니다.”
배우 송승헌의 첫 노출 연기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송승헌 자신은 “물론 긴장하고 걱정도 했지만 노출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었어요. 만나지 말았어야 할 두 사람이 만나 벌이는 안타까운 사랑, 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응원 받을 수 없지만 모든 것을 거는 김진평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저를 남김없이 불살랐습니다”라고 즉답을 회피했다.
송승헌의 노출에 대한 이야기는 김 감독 입에서 나왔다. “그동안 제 영화의 남자배우들, 그들의 노출은 그저 ‘곰돌이’ 수준이었어요, 몸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는 거죠. 이번에도 그렇게 시작했는데, 깜짝 놀랐어요. 여배우 이상으로 아름답더라고요. 남자배우를 놓고 조명감독을 불러 의논해 보긴 처음이에요(웃음). 여배우 다루듯 찍어 봤습니다”라며 기대감을 높였다.
어느덧 20년차 배우. 20년간 쉼 없이 연출자의 러브콜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을 스스로는 뭐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배우 송승헌의 강점, 정체성 말이다.
“음, 어려운 질문이네요. 그동안엔 대부분 착한 남자, 따뜻한 사람이 필요해서 저를 부르셨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어요. 이번처럼, 제 안의 또 다른 부분을 끄집어내 주시겠다는 감독님들도 간간이 계셨고요. ‘인간중독’이 제게는 본격적으로 변화의 시작점이에요, 답을 더 찾아봐야 할 것 같아요.”
다른 배우와 차별화 되는 배우 송승헌의 고유성은 ‘착한 진심’이다. 선한 인상을 가진 배우도 많고, 착한 사람 연기를 잘하는 배우도 많지만 그 진정성의 깊이는 송승헌이 단연 최고다. 김대우 감독이 말한, 인생을 올바른 방향으로 끌어가는 그의 인격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배우의 팔색조 변신은 분명 관객에게 즐거움이지만, 송승헌이 지닌 소중한 강점을 잃지 않는 모색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