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대형사고 '스톱'(상)]강제력 없는 매뉴얼...제2·제3의 삼풍백화점 시간문제

2014-05-07 18:44
화재·지진에 취약한 구조., '최저가 낙찰제' 등 공사단가 후려치기도 문제

아주경제 이명철 기자 ='이번 세월호 참사와 서해 훼리호 침몰(1993년)', '와우아파트(1970년)ㆍ성수대교(1994년)ㆍ삼풍백화점(1995년) 붕괴', '대구 지하철 참사(2003년)와 최근 지하철 2호선 추돌'…

이들의 공통점은 안전 불감증이 낳은 인재란 점이다. 건설ㆍ교통 분야는 특히 국민 생활과 직결돼 사고 발생시 수많은 사상자를 내는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본지에서는 매번 되풀이되는 대형 사고 예방을 위해 현재 건설ㆍ교통분야 시스템의 문제점을 살피고 개선 방향을 짚어본다. 

 
와우아파트가 무너지면서 33명이, 성수대교 붕괴로 32명이 목숨을 잃었다. 삼풍백화점 참사 때는 무려 502명이 희생됐다. 국민 생활과 밀접한 건설은 다른 어느 분야보다 강력한 안전 대책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삼풍백화점 사고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도 비슷한 사고는 계속되고 있다. 사고 때마다 사고 재발 방지에 총력을 기울이는 듯한 모습이지만 지난 2월 경주 마우나리조트 체육관 붕괴로 10명이 또 목숨을 잃는 등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건설안전과 관련한 일부 매뉴얼은 법적 효력도 없어 안전관리에 무용지물인 것으로 나타났다. 

◆매뉴얼 천국, 사고 때마다 점검만 반복

국토교통부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지난달말부터 전국 4000여개 건설 현장에 대한 안전점검과 매뉴얼 개선에 나섰다. 건설현장의 재난 대응 및 유지관리 체계를 살피고 신속한 인명구조를 위한 초동조치 매뉴얼을 만든다는 것이다. 정부가 발빠르게 후속 조치 마련에 나선 것은 그나마 환영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국토부는 지난해 5월에도 재난 대응을 위한 매뉴얼 특별점검을 실시했다. 이번 현장 점검이 세월호 참사에 따른 보여주기식 행정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국토부와 관련한 재난 대응 매뉴얼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시행령에 의거해 풍수해, 육상화물운송, 도로터널 사고 등 22개로 구성됐다.

이 같은 매뉴얼 외에도 각종 공사 현장에서 수많은 매뉴얼이 적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지난해 특별점검 등을 거치며 추가 매뉴얼 마련도 검토 중이다. 

문제는 매뉴얼이 실제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일부 매뉴얼은 법적 구속력이 전무한 실정이다. 국토부가 일선 공사 현장 등에 하달한 ‘건설공사 안전관리업무 매뉴얼’의 경우 연구 용역 보고서 수준으로 일부 사항은 관련 법 제정도 안된 상황이다. 

예컨데 건설공사 위험요소를 바탕으로 설계조건을 작성토록 한 ‘건설안전을 고려한 설계서(과업지시서)의 작성’ 조항의 경우 관련법이 없다. 

국토부 관계자는 “매뉴얼은 참고 자료일 뿐 실제 안전관리는 법에 규정된 안전관리 계획에 따라 이뤄고 있다”며 “연구 용역을 통해 마련된 일부 매뉴얼을 지킬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화재·지진에 취약한 구조 개선 시급

국내 건축물과 시설물이 화재나 지진 등 재난·재해 취약한 구조란 점도 문제다. 초고층 건물이 많아지고, 지진 발생빈도가 늘고 있어서다. 

2010년 부산 초고층 주상복합 화재 사건, 지난 2월 건설중인 롯데월드타워(123층) 고층부 화재 사건이 좋은 예다. 초고층 건축물의 경우 소방차 사다리 및 물줄기 자체가 닿지 않는 등 화재에 취약해 대형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진압이 어려우면 화재에 버티는 내화충전재를 강화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롯데월드타워의 경우 지난해에도 시공된 내화충전재가 화재에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당시 의문을 제기했던 새누리당 이명수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해 6월 1군 건설사를 대상으로 내화충전재 성능 실험을 한 적이 있는데 대부분 미달로 나왔었다”며 사실상 국내 초고층 건축물 대다수가 화재에 취약하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충북 태안군에서 발생한 규모 5.1의 지진으로 서울까지 흔들림 현상이 나타나는 등 더 이상 우리나라도 지진 안전지대를 자처할 수 없지만 지진에 대비한 내진 설계도 미비한 편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이노근 새누리당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월(사용승인 기준) 전체 건축물 681만6192동 중 내진설계가 적용된 것은 약 3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가 낙찰제' 등 공사비 후려치기도 문제 

건설현장이 안전에 취약한 이유 중 하나로 최저가 낙찰제 등 일명 ‘공사비 후려치기’가 꼽히고 있다. 제살 깎아먹기 식으로 수주한 공사의 수지를 맞추려다보니 무리한 공기 단축을 추구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안전과 관련한 사항도 자연스럽게 무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원도급사와 하도급사가 공사비를 일명 ‘맞춰 먹으려면’ 공기 단축이 필수다 보니 안전 관련 매뉴얼은 고사하고 시방서조차도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라며 “사망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감리자나 안전 담당자도 묵인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대폭 깎인 공사비에 따른 원도급자와 하도급자간 갈등 및 부실시공도 꾸준히 발생하는 상황이다. 최근 세종시에서 발생한 모아 미래도 아파트의 ‘철근 누락’도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던 하도급업체의 소행인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심규범 건설산업연구실장은 “공사비가 낮으면 사업주는 당장 공사를 위해 안전 기준을 낮추고 발주자는 이를 감안해 또 공사비를 낮게 책정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라며 “세월호 사태에서 보듯 전문성과 책임감이 부족한 안전 담당자와 근로자로 채워진 공사현장은 결코 안전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적정 공사비 확보라는 기초를 마련한 후 안전 관련 기준을 강화하는 방안이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