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미국에서 일본이란 나라

2014-04-27 03:33

아주경제 워싱턴 특파원 홍가온 기자=지난 2007년 7월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선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일제 강점기 시절 종군 위안부를 운영했던 일본의 사과를 촉구하는 소위 '위안부 결의안'이 미 연방 의회에서 채택된 것이다.

당시 종군 위안부가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했던 미국인들은 이 결의안을 계기로 일제 강점기 당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근래 들어 미국 내 일부 지역에선 '평화의 소녀상' 등 조형물이 세워지고 각 주별로 종군 위원부 결의안이 상정되는가 하면 버지니아에선 일본의 적극적인 로비에도 불구하고 관내 모든 교과서에 '일본해'와 함께 '동해'를 함께 표기하는 법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번에 일본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아베 신조 총리의 역사인식 변화와 위안부 문제 해결책 마련을 촉구하는가 하면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선 "위안부 문제는 끔찍한 인권 침해"라며 "끔찍하다, 지독하다, 쇼킹하다"는 강도 높은 표현을 써 가며 언급하기도 했다.

이 같이 미국 정치권에선 시간이 갈수록 일본의 과거 인권 침해 사례에 관해 관심을 더욱 기울이면서 각종 결의안과 법안 등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아닌 일반 미국 국민들은 어떨까? 어떤 부류의 미국인들과 가깝게 지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많은 미국인들은 일단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잘 모른다.

얼마 전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건 관련 뉴스가 미국 주요 언론의 첫 페이지에 연일 오르면서 주목을 받고 있지만 한국이라는 나라, 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졌던 그리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미국인들은 별 관심이 없는듯 보인다.

게다가 안보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핫 이슈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요즘 미국인들은 대한민국의 박근혜 대통령 보다는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더 관심을 갖고 있는 게 현실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일제 강점기 당시의 종군 위안부 문제는 그저 단순한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아예 지구 밖의 이야기로 치부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일본은 다르다. 하와이를 제외한 미국 본토에서 일본인을 보기가 힘든 요즘이지만 미국 속에 스며든 일본 문화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은 상상을 초월한다.

워싱턴,D.C.에선 몇해 전까지 벚꽃 축제를 할때면 스시(초밥) 축제도 같이 열렸는데 인터넷에서 입장권 판매가 시작되면 1∼2시간 안에 모두 매진됐다. 티켓 한장 가격이 200 달러 정도 하는데 없어서 못 팔 정도다.

축제장에서 일본술 '사케'를 마시고 있노라면 어김없이 미국인이 다가와 자신의 일본 방문기와 함께 일본에 관한 상식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자신이 일본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난다. 한참을 듣다 '나 한국사람이다'라고 하면 뻘쭘해져서 간다.

만화 공부를 하는 학생들도 이젠 디즈니 만화보다는 일본식 만화를 선호한다. 부드럽게 곡선처리한 캐릭터와 자연스런 몸동작이 특징인 디즈니 만화보다 특정 신체부위를 과장해서 표현하고 끊기는 듯한 몸동작을 내세우는 일본 만화가 대세다.

음악 공부도 일본으로 떠나는 미국인들이 많다. 각종 악기를 다루는 방법과 작곡기법, 그리고 기획, 음악 산업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을 찾는다. 아직 음악 공부를 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지금은 많이 늘었지만 여전히 도심 곳곳에 있는 무술도장 간판에는 '가라데(Karate)'라는 문구가 많다. 태권도를 가르쳐도 가라데, 쿵후를 가르쳐도 가라데인 것이다.

무술을 좀 안다는 미국인들도 극진 가라데를 창시한 최배달 사범이 한국인인줄 모른다. 극진 가라데를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가고 있다. 극진 가라데도 일본 것, 워싱턴,D.C.에 심어진 3000그루의 왕벚꽃나무도 일본것으로 알고 있다.

얼마 전 캐나다 출신의 세계적인 인기 가수 저스틴 비버가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이 논란을 불러 일으킨 일이 있다. 한국 홍보 전문가인 성신여대의 서경덕 교수는 야스쿠니 신사의 진실을 알리는 동영상을 저스틴 비버에게 보냈다고 한다.

서 교수는 "저스틴 비버가 야스쿠니 신사에 대해 잘 몰라서 그랬을 것"이라며 "비판과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은 한국을 모른다. K-Pop 스타는 알아도, 한국 배우와 탤런트는 알아도 한국은 모른다. 김치와 비빔밥은 알아도 한국은 모른다.

한국 역사를 그들에게 다 가르칠 수는 없다. 하지만 잘못된 부분만이라도 제대로 알릴 수는 있을 것이다. 서경덕 교수와 가스 김장훈 등 몇몇이 이런 일을 하기란 쉽지 않다.

워싱턴,D.C.를 비롯한 미국 주요도시에 대한민국 주미 대사관과 함께 한국문화원이라는 것이 운영되고 있다. 한국을 알리기 위해 세워졌다. 각종 훌륭한 프로그램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의 더 많은 관심을 끌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프로그램 개발과 함께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린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한국어 강좌를 개설케 하고 도심지 곳곳에서 문화공연을 펼치는 것은 물론, 미국인 축제에도 적극 참여해 한국 홍보에 나서야 할 것이다.

정치인을 상대로 한 외교도 중요하지만 일반인들을 상대로 한 민간 외교가 먼 미래를 봤을 때 더욱 효과적이고 오래 가는 방법이 될 것이다.

그래서 미국인을 비롯한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으로 태권도 유학을 가고, 막걸리에 김치 먹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한국에 가서 살아보는 게 평생 소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