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철의 패션 시크릿] 디자인카피와 디자인영감

2014-04-14 10:29
카피 없는 디자인은 어디까지…제품이 설명하게 만들어야

김형철 패션디자이너


규모가 있는 패션 업계에 디자이너로 일을 하게 되면, 반드시 각서를 쓰게 되는데 내용은 이러하다. "본인은 업무 진행에 있어서 타 디자인에 모방과 모조, 타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 침해, 타 전시물에 대한 모방, 기타 제작물에 제 3자 판단 시 유사성이 인정될 모방 및 모조를 하지 않을 것이며 위반 사실이 발생하여 법적책임의 문제 발생 시 전적으로 책임질 것임을 각서 합니다." 라는 각서를 디자이너에게 요구한다.

왜냐하면 요즘 패션계에는 디자인 카피캣에 대한 법적공방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었다. 사실 패션 업계에서 디자인 도용은 카피인지 아닌지 구분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소송 당사자가 얻는 이익이 크지 않다는 이유로 '쉬쉬'해 왔다. 더군다나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는 업종에서 시즌이 지나면 재판이 길어질수록 득보다 손해가 많다는 판단에서다.

일각에서는 국내 패션 업체들이 분쟁의 소지를 무시하거나 디자인카피에 있어 안일한 생각이 팽배해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제는 기업 스스로 디자인 카피나 상표 도용이 중대한 범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해외업체와 국내기업의 지적재산권 소송의 예지만, 얼마 전부터는 규모가 큰 기업들이 작은 규모기업을 대상으로 소송을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어떤 경우에는 합의금 벌이가 목적인 기업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카피 없는 디자인이란 어디까지일까' 라는 물음에 상기의 각서 조항이 떠오른다. 한 시즌에 수백 개의 디자인을 해내야 되는 디자이너에게는 카피는 쉬운 방법일 수 있다. 그만큼 디자이너에게는 많은 영감이 필요하기 때문에 출장과 시장조사 각종 문화와 전시회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하며 산다.

패션의 선진국이라는 나라에 가서 시장조사를 하게 되면 정말 많은 영감을 받는다. 우리가 입는 옷은 서구문화에 영향 받은 바가 크기에, 상대적으로 짧은 우리나라의 현대적 패션 문화 역사로는 따라 잡기 힘든 부분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옷 에는 수많은 부속이 있다. 그래서 실제로 우리는 옷을 사서 해부하면 많은걸 배우는데, 옷의 부위별로 패드의 두께, 심지, 봉제 방법에 왜, 십여 가지가 넘는 이 부자재를 왜 쓰는지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되면 서구의 패션문화에 담겨진 저력에 실로 놀라움에 온 몸에 솜털이 일어설 정도로 감탄할 때가 있다. 그 안에는 수백 년 문화가 녹아 있음을 그들의 실제 옷을 통해 느끼며 배우는 것이다.

가끔 경력디자이너를 면접 보다보면 전 직장의 퇴사 이유를 물어 보게 되는데 그중 열 명중 서너 명이 카피를 통한 디자인 업무에 염증을 느껴 그만두었다고 한다.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구나! 라는 생각도 들지만, 단순한 디자인 카피와, 참조를 통한 스스로의 디자인 자질, 영감의 향상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든다.

판에 박은 듯이 다른 브랜드의 옷의 구조며 디테일을 따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나, 영감을 받아 스스로의 독창적인 패션세계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어려운 일이 지만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오리지널이라는 게 없이 창조가 있다면 매우 훌륭한 일임은 당연하다. 그러나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카피는 필요하다. 흉내 내지 말고 당신의 지식으로 머릿속에 넣어두어라. 좋은 디자인은 제품이 스스로 설명하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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