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 된 워크아웃 (상)]회생절차인가 퇴출절차인가....워크아웃에 '아웃'되는 건설사들
2014-04-04 07:50
은행 채권회수 몰두,..."은퇴직전 직원 관리단 파견"
아주경제 이명철·노경조 기자 =“민간사업 수주는 말할 것도 없다. 컨소시엄을 구성해 해외나 공공공사에 입찰을 하려고 해도 다른 건설사들이 ‘왕따’를 한다. 아예 구조조정 중인 업체 명단을 달라고 요구하는 발주업체도 있다. 일종의 블랙리스트가 되는 것이다.”(건설업계 관계자)
워크아웃에서 법정관리로 넘어갔던 벽산건설이 최근 파산하면서 워크아웃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은행이 기업 살리기보다 채권회수에 몰두하면서 워크아웃을 거치면서 자산은 물론 인력마저 고갈될 상태로 파산으로 내몰리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건설업계에선 경영난에 빠진 기업을 구제하기 위해 도입된 워크아웃 제도가 기업 회생이 아닌 '아웃'절차란 비아냥이 나오고 있다.
◆해외사업·택지개발 꿈 못 꿔…그나마 공공공사로 연명
워크아웃에 들어간 건설사 중 자체 신규사업을 진행하는 업체는 손에 꼽을 만큼 드물다. 자금 수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다. 지방에서 어렵게 택지지구 아파트를 분양한 S건설사(워크아웃) 관계자는 “인기가 높은 공동주택용지는 현금이 풍부한 업체들이 대거 몰려 수백대 1의 경쟁률을 나타내기도 한다”며 “다른 영세법인이 당첨돼도 돈을 주고 사들이면 되지만 우리 같은 경우는 낙찰하더라도 계약금 내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워크아웃 중 올해 수도권 도급사업을 진행한 K사 직원은 “주채권은행에서 파견하는 자금관리단이 상당히 보수적으로 자금집행을 하기 때문에 사실상 신규사업은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며 “단순 도급도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대한 지급보증을 서야하기 때문에 눈치가 보인다”고 설명했다.
해외 사업은 더욱 어렵다. 건설공제조합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면 그래도 회생 가능성이 있다고 보지만 해외에서는 사실상 부도로 보기 때문에 수주가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K건설 관계자는 “지난해 동남아시아에서 공사 두건의 최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워크아웃 때문에 발주처가 차일피일 계약을 미뤘다”며 “한건은 재입찰에 들어갔고 나머지 공사도 계약이 요원한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축소로 공공공사가 줄어든 것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혹시나 공공공사 발주가 생겨도 건실한 건설사들 차지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공공공사는 워크아웃 건설사에게 따로 불이익을 주지는 않는다”면서도 “단 공사 수주 주요 요건인 신용등급이 낮다보니 수주가 쉽지만은 않은 편”이라고 풀이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금이 풍부하고 신용도가 우수한 군인공제회나 공무원연금관리공단 등의 발주 물량이 인기가 높은 편이다. 최근에는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높은 지역주택조합 사업도 늘고 있다.
워크아웃 도중 법정관리에 들어간 W건설 분양 담당자는 “지역주택조합은 조합원을 다 모집해야 시공사 모집 후 사업을 확정하기 때문에 이 사업밖에 답이 없다”고 말했다.
◆임금·고용불안… 당장 졸업해도 살길 ‘묘연’
신규 사업 여부와 관계없이 채권은행은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자산매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워크아웃 후 강남에 있는 사옥을 매각한 W건설은 관계자는 “워크아웃 당시 채권단이 빨리 자금을 회수하려고 자산매각을 서두르면서 현재 남아있는 토지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신규사업을 벌일만한 땅이 없는 셈이다.
특히 관리 자격으로 나와있는 채권은행측의 전문성에 대해 의구심을 표출하는 업체가 적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건설사 부장은 “퇴직을 얼마 남겨두지 않거나 은퇴를 2~3년 미룰 요량으로 관리인 자격으로 건설사에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기업 회생 의지도 없고 건설업 자체를 모르면서 경영에 간섭하다 보니 사업을 망치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D건설 팀장도 “짧게는 몇 개월 단위로 채권은행에서 나오는 직원들이 수시로 바뀌어서 업무 연속성이 없다”며 “기존 땅을 정리하는 게 주 업무로 생각하다보니 회생이 힘든 것”이라고 꼬집었다.
지속되는 구조조정과 경영 악화, 연봉 동결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떠나는 직원도 늘고 있다.
워크아웃 중인 D건설 관계자는 “수도권에 있던 사옥을 매각했고 현재 사무실을 임대해 쓰고 있는데 직원이 워크아웃 5년 동안 60% 가량 줄어서 모자라진 않다”며 “당연히 5년간 연봉 인상은 생각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한숨 쉬었다.
한 건설사 직원은 “직원이 400명 가량인데 또 다시 채권단에서 10% 가량을 구조조정하라고 압박하고 있다”며 “임금 동결 6년여 만에 지난해 월급을 올려줬는데 월 10만원 가량에 불과했다”고 귀띔했다.
자산과 인재를 모두 잃어버린 상태로는 워크아웃을 벗어나도 막막한 상황이다. 워크아웃 건설사 관계자는 “연말이면 워크아웃 졸업시기가 다가오는데 껍데기만 남아 어떤 사업도 할 수가 없다”며 “아예 워크아웃을 연장하고 경기가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방법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