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대장금’에서 ‘별그대’까지 10년
2014-03-19 13:50
아주경제 홍종선 기자 = 탈북자들의 전언에 의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국공화국(이하 북한)에서 대한민국 드라마의 인기가 대단하다. VHS테이프보다 휴대와 반입이 쉬운 USB에 최신 한국 드라마가 담겨 전파되고 있다.
탈북자와 북한전문가들은 단순히 작품과 배우에 대한 관심을 넘어 북한 내 문화를 바꾸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가까이는 ‘동무’ 대신 ‘자기’라는 호칭이 부부와 연인 사이에 퍼지고 있어 심지어 사상교육을 받는 경우도 있고, 멀리는 한국의 경제·사회 수준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켜 북한 통치체제의 근간을 흔든다고 말한다.
남한 드라마의 인기를 저어하는 이들이 있으니 비단 당 고위층뿐만이 아니다. 북한 남성들이 드라마 속 남한 남자들을 보며 ‘머저리’라고 칭하며 내켜하지 않는단다. 가부장적 권위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아이까지 들쳐 업고 집안일 하는’ 남한 남자들이 눈엣가시라는 것이다. 남한 드라마에 열광하는 북한 여성들이 ‘자기야’라는 호칭을 앞세워 요구해 올 가사노동 분담이 성가시고 불편한 게 심리적 배경이라는 설명이다.
드라마 속 한국 남성들을 꺼려하는 현상은 2000년대 초중반의 일본을 연상케 한다. ‘겨울연가’로 촉발된 일본에서의 한류열풍의 중심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웃어 줄 것 같고 무슨 일이든 도와 줄 것 같은 배용준이 있었다. 무릎 꿇고 일하러 가는 남편을 배웅하던 중년 이상의 여성들은 다정한 남자 배용준에 열광했다. 그를 보기 위해, 손 한번 잡기 위해 한국행을 서슴지 않았고 ‘욘사마’에 관한 것에는 거리낌 없이 지갑을 열었다.
일부 언론은 ‘배용준 발’ 황혼이혼을 사실인양 보도했고, 소수 남성들은 한국 남자의 친절은 거짓일 뿐이라며 자국 여성들이 속고 있는 것이라고 혐한의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마치 거품이 빠져 가는 일본경제, 그로 인한 가정의 흔들림을 배용준 탓으로 돌리고 싶은 듯 혐한 감정은 거칠었다. 온라인상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누리꾼들이 서로의 추함을 끄집어내 설전을 벌였다.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 열풍이 거세다. ‘돈의 화신’이라는 타이틀로 중국에서 방영된 ‘상속자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를 시작으로, 국내 드라마명이 그대로 이어진 ‘별에서 온 그대’가 연달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퇴근길에 저녁거리 장을 보고 식사 준비에 청소까지 담당하는 중국 남성들이어선지 ‘남자 망신시키는’ 한국 남자들이라는 비난은 들리지 않는다.
호불호를 떠나 남자가 주목 받는 것은 북한이나 일본과 비슷하다. ‘돈의 화신’의 박신혜를 차치하더라도 ‘별에서 온 그대’의 전지현은 이미 중화권에서 이름이 알려진 스타임에도 중국 시청자들은 남우주연 이민호와 김수현에 열광하고 있다. 사실 두 사람이 연기한 ‘돈의 화신’ 김탄이나 ‘별에서 온 그대’ 도민준은 일상에서의 다감함과 거리가 있다.
그럼 왜 인기가 높을까. 물론 이민호, 김수현 두 사람의 우월한 외모도 한 몫 하겠지만 사랑을 위해 막대한 재산이든(김탄) 심지어 목숨이든(도민준) 기꺼이 내놓는 모습이 중국 여성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국가와 가문, 쿵푸문파의 대의를 위해 몸을 쓰는 공적 인물이 아니라 내 여자 하나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붓는 보다 사적인 모습에 신선한 설렘을 느낀다.
한국 드라마 인기 요인을 시시콜콜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대장금’에서 ‘별에서 온 그대’까지 10년이 걸렸다. 중국인들이 무엇에 마음을 빼앗기는가에 대한 체계적 분석, 이를 바탕으로 한 조직적 대응이 제3, 제4의 한류드라마 도래를 앞당길 것이다. 요행 속에 대박이 터지고 주먹구구로 대비하기에 13억 인구의 중국 시장은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