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옥상 유홍준 강요배등 민중미술작가 47명 "인정많던 용태 형, 힘내"

2014-03-18 08:40
김용태 전 민예총 이사장 간암투병..'용사모' 출판 기념회-기금마련 미술품 경매 개최

 

김용태를 특유의 화법으로 그린 강요배의 ‘용태 형’, 종이에 콘테·1991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강연균, 강요배, 강홍구, 권순철, 권용택, 김건희, 김서경, 김영수, 김영중, 김운성, 김인순, 김정헌, 김종례, 김준권, 김지원, 김평준, 노원희, 두시영, 류연복, 문영태,민정기, 박불똥, 박영숙, 박진화, 박흥순, 손장섭, 송 창, 신학철, 심정수, 안규철, 오 윤, 윤석남, 이명복, 이종구, 이철수, 임옥상, 정동석, 정인숙, 주재환, 최민화, 홍선웅, 황세준, 황재형.

 이들 43명은 미술계에서 이른바 민중미술계열 화가로 이름있는 사람들이다. 80~90년대 미술계를 쥐락펴락했던 이들이 실로 오랜만에 한자리에 이름을 올린 것은 '용태 형' 때문이다.

 일명 '용태 형'은 당시 술자리가 파할때마다 "니 차비 있나?" 멘트를 날리며 일일이 사람들을 챙겼다는 전설을 가진 김용태 전 민예총 이사장(68)이다.

 1980년대 민중미술 운동을 이끌었던 미술동인 '현실과 발언'의 창립 동인으로 사회 참여를 시작한 김 전 이사장은 민족미술협의회 초대 사무국장, 민예총 초대 사무처장 등을 지내며 주로 '일꾼' 역할을 도맡았다.​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에는 백기완 대통령 후보 비서실장을 지냈고, 1993년 북한 정영만 조선미술가동맹 위원장과 최계근 중앙미술심의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코리아통일미술'전을 성공리에 치르며 남북 문화 교류의 물꼬를 트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진가는 늦은 밤 인사동 골목에서다. 술에취한 친구와 후배들에게 경사도 사투리로'니 차비있나'며 꼬깃꼬깃한 천원짜리 지폐를 손에 쥐어주며 돌아갈 차비를 챙겼다. 당시 용태형에게 천원짜리 지폐 한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시피했다.

인정많고 따뜻한 마음을 가졌던 '용태 형'이 간암에 걸렸다.  그의 아픔에 선후배들이 뭉쳤다. 이제는 모두 유명인사가 된 '용태 형'의 선후배들이 나서 김용태를 사랑하는 모임 '용사모'를 만들었다.

 사랑은 아름다운 기적을 보였다. 원고료없는 청탁과 짧은 마감도 칼같이 지켜 한달만에 책을 만들었다.

작은 키에 "혁대를 배꼽까지 올려 입은" 채 두 주먹을 쥐고 목청껏 '산포도 처녀'를 부르던 '용태 형'을 떠올리며 책 제목도 '산포도 사랑, 용태 형'(현실문화)으로 지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김윤수 민예총 초대 공동의장,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신경림 시인, 구중서 문학평론가 등 김 전 이사장과 40여 년 연을 맺어 온 문화예술인 46명이  쓴 글을 엮은 책이다. 

 이 책을 발간하고 전시기획을 맡은 독립 큐레이터 전승보씨는 17일 서울 한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나 "모두 원고료도 받지 않고 원고 청탁을 한 지 2주 만에 글을 보내왔다"고 말했다.


'산포도 처녀'를 부르던 '용태 형'을 그린 민중화가 강요배는 책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거울이라면 다면경을 가진 사람"이라며 "인정 따라 낮고 넓게 흐르던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궂은일 마다않고 '밥상을 차리던 사람'이던 용태 형은 대중적 인지도는 없지만 우리사회를 관통하던 암울한 시대에 째째하게 굴지않고 문화예술인들에게 강한 흔적을 남겼다.

'절친' 유홍준 교수는 "주둥이로만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은 용태 형 앞에서 맥을 못 췄고 먹물 냄새가 나면 막걸리 주전자가 날아갔다"며 "그래도 될 정도로 인간적인 신뢰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작가 임옥상은 "용태 형은 우리가 나름 화가라고 겉멋이 들었을 때 그런 것 없이 일종의 일꾼 같았다"며 "그런 모습 때문에 모두가 격의 없이 친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정헌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은 "오로지 '산포도 처녀' 하나만으로 좌중을 압도했다"며 "작은 키에 바지춤을 들어 올리며 챔피언벨트를 찬 권투선수처럼 두 손을 앞으로 내밀며 열창할 때는 다들 박수치기보다 배꼽을 잡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백기완 소장은 발간사에서 "김용태 선생은 마땅히 들풀임을 살아왔다"며 "그의 삶, 그의 투쟁, 그의 역사가 곧 거대한 예술이 아니던가"라고 회고했다.
 

=박진화 < 개화-땅2 >, 캔버스에 유채, 194x130cm, 2012추정가 2,500만원 / 시작가 1,250만원


 '용사모'는 오는 26일 오후 5시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책 출판 기념회와 함께 작가 43명의 작품 100여 점을 모은 '함께 가는 길' 전시회를 연다.

 강요배, 권순철, 김인순, 김정헌, 민정기, 신학철, 임옥상 등 '용태 형'을 기억하는 작가들이 흔쾌히 작품을 내놨다. 특히 오는 30일 평창동 서울옥션 스페이스에서 '사랑의 힘' 경매를 열어 전시회에 나온 작품 중 35점을 출품한다.

 전시회와 경매 장소는 모두 가나아트 이호재 회장이 무료로 제공했다. 김 전 이사장이 지금은 폐간된 격월간 '가나아트'의 초대 편집주간을 맡았던 인연에서다. 이 회장은 경매 수수료도 받지 않기로 했다. 수익금은 용사모기금과 김 전 이사장의 치료비 등에 사용될 예정이다. 

 
전승보 큐레이터는 “시대적 환경을 외면하지 않고, 눈앞에 있는 개인적 불이익이나 두려움을 마다하지 않고, 우리 모두의 공동체인 사회를 위한 발언한 작가들의 작품”이라며 “전시회와 경매를 통해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한 자리에 힘을 보태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30일까지.

용사모 기금마련 경매에 나온 황재형의 < 자화상 >, 60.6x72.7cm(20호F), 캔버스에 유채, 2013,추정가 4,000만원 / 시작가 2,000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