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중국역사> 린뱌오 마오쩌둥 암살 계획 작성 등
2014-03-16 18:56
아주경제 한오종 기자 =
▲ 3월17일(월) - 1919년, 중국 최초의 프랑스 유학단 출국
중국 최초의 근공검학 유학단이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근공검학(勤工儉學) 운동은 ‘일하면서 배운다’는 뜻으로 1912년에 시작되었고 비용을 절약하며 유학을 하는 방법으로 고안되었다. 1915년 6월 차이위안페이(蔡元培) 등이 근공검학회를 조직했다. 조직의 핵심은 '근면하게 일하고, 절약하며 공부를 하며, 노동자의 지혜와 식견을 가질 것'이었다.
수 많은 중국 유학생들이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고 이들은 1921년 파리공산주의소조, 중국공산당 유럽지부 등을 만들고 공산주의 활동을 전개했다.
▲ 3월 22일(토) - 1971년, 린뱌오 마오쩌둥 암살 계획 작성
당시 2인자였던 린뱌오(林彪)는 상하이(上海)에서 공군에 복무중이었던 아들 린리궈(林立果), 저우위치(周宇馳) 등과 함께 마오쩌둥(毛澤東) 암살을 목표로 한 쿠데타 계획을 작성했다.
무장폭동을 의미하는 ‘무장기의(武裝起義)’의 '무기의(武起義 : 우치이)'와 발음이 같은 ‘571’을 작전명으로 삼아 이 작전계획을 '571공정기요(工程紀要)'라고 명명했다.
이 계획은 군사적인 선제공격으로 상대를 제압하여야 한다며 준비가 되어 있건 되어 있지 않건 간에 ‘가마솥을 깨트리고 배를 침몰시켜야 한다(破釜沈船)’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고위 정치집회를 공격하여 지도층을 일망타진하거나 폭파, 차량사고, 암살, 납치, 도시유격전 등의 방식을 통해 마오쩌둥을 암살하고 군사정변을 일으켜 전국 정권을 수립하거나 혹은 할거 상황을 만들어 궁극적으로 자신이 국가 지도자에 오르겠다는 구상이었다.
린뱌오는 이 계획이 발각되자 가족과 함께 비행기로 탈출하여 소련 이르쿠츠크로 망명하려하였으나 도중에 몽골 지역에서 비행기가 추락하여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린뱌오의 쿠데타에는 국가 지도자 위치를 두고 마오쩌둥과의 대립이라는 배경이 있었다. 린뱌오는 1959년 루산에서 열린 공산당 정치국 중앙위원회 총회에서 당시 마오쩌둥의 대약진정책을 비판하다가 실각한 펑더화이와 달리 마오쩌둥을 적극 지지하면서 중국 공산당 정치국 2인자로 급부상하게 된다. 그는 국무원 부총리, 국방위원회 부주석을 연임하고 펑더화이의 뒤를 이어 국방부장이 되었다.
1969년 중국공산당 제9기 전국대표대회에서 린뱌오는 마오쩌둥의 천재론을 주장하여 개인 숭배를 찬양했고, 자신이 마오쩌둥의 후계자임을 당규약으로 명기했다. 린뱌오는 이 회의로 장칭을 견제하고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하려는 의도였으나, 오히려 마오쩌둥의 견제로 린뱌오는 오히려 비판의 대상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 3월23일(일) - 1993년, 중국 최초의 성인용품점 등장
중국 최초의 성인용품점 ‘야당샤와바오젠중신’(亞當夏娃保健中心, 아담과 이브 보건센터)이 영업을 시작했다.
베이징 자오덩위루143호(趙登禹路143號)에 들어섰으며 30평방미터의 면적이었다. 돌기가 있는 콘돔, 진동기 등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제품들이 전시되었다. 사람들은 거스름돈을 받기 바쁘게 사라지거나 수 많은 사람들이 부끄러워서 차마 가게를 들어가지는 못하고 가게 앞을 배회했다고 한다.
자오덩위루143호는 지하철 6호선과 4호선이 만나는 핑안리(平安裏) 지하철역 왼편에 있으며 현재 시청취 건설공정 안전질량감독센터가 들어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