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래의 OK시골] 프라이버시 그리고 이웃과의 교류에서 겪는 갈등

2014-03-05 15:00

멀쩡하던 남자들도 예비군복 입고 한 자리에 모이면 ‘이상해(?)’ 진다. 거칠어지고 쓸데없이 질척거린다. 이유가 넥타이를 푼 자유로움 때문일 거란 생각도 했었고, 군 생활에 대한 향수로 숨었던 남자의 야성이 들어나기 때문이 아닐까도 생각했었다. 그런 면도 조금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찬찬히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다. 익명성이 예비군들을 변하게 한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누군지 모르는 인터넷 공간에서 용감해지고, 부도덕해지고 염치없는 말도 쉽게 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똑 같은 옷을 입고 있으니 구분이 쉽지 않다. 내가 숨을 수 있고 결국엔 나도 내팽개친다.

도시 인심이 시골보다 거칠고 몰염치하다. 범죄도 많다. 시골보다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지 모른다. 아파트 앞집에 사는 사람과도 통성명이 없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쑥스럽게 목인사나 나누는 사이다. 뭐하는지 어딜 다녀오는지 누가 다녀가는지 모른다. 아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하지만 시골은 다 아는 열린 곳이다. 내가 한 일을 누군가는 알고 있다. 조금만 잘 못해도 나뿐 아니라 누구 집 자식으로 조상까지 욕 먹인다. 공동체에서 따돌림 당하고 마을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프라이버시는 쉽게 보장되지 않는다.

전원주택 짓고 시골로 이사 온 사람들 중 이렇게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환경에 대해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대수롭지 않게 문을 벌컥 열고 안방까지 들어오는 이웃과도 눈높이를 맞추기 힘들다. 시골서 이웃은 안방까지 공유하고 살 정도로 살갑다. 하지만 도시서 살다 간 사람에게 그곳은 극도로 예민한 프라이버시 공간이다. 내 마당에 누가 들어서는 것도 신경 쓰여 울타리를 하고 대문을 걸어 잠근다. 그래야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비밀이 보장된다.

시골도 예전 같지는 않다. 자동차도 사람들을 변하게 만들었다. 걸어 다닐 때는 길을 가다 만나는 사람도 있어 인사도 나누고 같이 걷기도 했다. 지나다 이웃에 들러 물도 한잔 얻어 마시며 자연스럽게 많이 알게 된다. 하지만 자동차는 다르다. 혼자 내 집 마당까지 갈 수 있다. 누가 왔는지 갔는지 모른다. 시골서도 익명성이 보장되고 비밀이 보장된다. 비밀이 있는 곳에 문제도 있다. 사람들이 몰염치해 지고 부도덕해진다. 작년 고위층 성접대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부론의 별장이 좋은 예다. 익명의 공간, 비밀의 정원에서 부도덕한 일이 벌어졌다.

전원생활에서 프라이버시를 지키며 이웃과 교류할 수 있는 적당함이 필요하다. 이것이 안돼 불편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김경래 OK시골 대표/www.oksig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