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장원석 분양 소장 "갤러리아 포레에는 수십억원이 아깝지 않을 만큼의 독특한 뭔가가 있다"

2014-03-04 15:36

장원석 한화건설 분양소장이 갤러리아 포레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형석 기자 leehs85@


아주경제 김현철 기자 = '김수현·지드래곤이 사는 집, 대한민국 최고가 아파트….'

수많은 수식어가 붙는 갤러리아 포레의 중심에 한 남자가 있다. 그에게는 '최연소 주택마케팅 팀장'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한화건설의 장원석 갤러리아 포레 분양소장(41)이다.

지난 2012년 서른아홉 나이로 한화건설에서 최연소 주택마케팅 팀장이 된 그는 일찌감치 서른 살 때부터 분양소장을 맡아왔다. 이후 10여년 동안 1만500여가구, 약 5조원어치의 집을 팔았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잘 나가는' 분양소장은 아니었다.

첫 분양소장으로 맡은 100여가구의 광진한화꿈에그린 분양 당시에는 제대로 쓴맛을 봤다. 노무현 정부가 부동산과의 전쟁을 선포한 때라 더욱 그랬다. 장원석 소장은 "자신만만하게 시작해서 호되게 당했다"고 회고했다.

이후 몇 군데 분양소장을 거치던 그는 2005년 동탄1신도시에서 3개월 만에 1500가구를 팔아 치우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때의 성과로 그는 인생의 전환점이 된 인천 에코메트로 분양소장을 맡았고, 3차까지 총 9000여가구를 팔아 치우는 등 '대박'을 냈다. 과장 1년차 시절이었다.

장 소장은 "여러 분양소장 중에 특별히 뛰어날 것이 없었는데, 그 직급에 왜 그런 큰 일을 맡기셨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며 "보통 그 정도 규모의 현장에는 임원급이나 최소한 베테랑 부장급이 소장을 맡는데 당시 저는 소장 중에도 거의 막내급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현장에서 주부홍보단 100여명을 처음 도입했다. 지금은 분양현장에서 흔히 쓰이는 마케팅 방법이지만 당시에는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입김이 센 주부들로 구성된 이들은 입소문을 통해 현장을 홍보하기 시작했고, 이는 분양 성공으로 이어졌다. 요즘으로 치면 '빅 마우스'를 이용한 바이럴 마케팅을 일찌감치 현장에서 활용한 것이었다.

이 성과를 인정받아 2008년 고분양가 논란의 중심에 있던 갤러리아 포레 분양소장을 맡게 됐다. 연승행진으로 한창 자신감이 붙었을 때였다. 그러나 그해 9월 리먼 사태가 터지는 등 시장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았고, 결국 승승장구하던 그도 참패를 면할 수 없었다.

결단이 필요했다. 장 소장은 "다음해 3월 회사에 VVIP를 타깃으로 하던 홍보를 조금씩 오픈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며 "명품 브랜드인 에르메스도 블라인드 마케팅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며 회사를 적극 설득했다"고 말했다.

결국 기자간담회를 시작으로 국내에 갤러리아 포레에 적용된 해외 유명 건축가 장 누벨의 디자인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이 전략은 성공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대기자들이 층·향에 상관없이 억대 계약금을 걸고 입주를 위해 줄을 서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히 집이 좋아서 수십억원대의 집을 구매할까? 장 소장은 "갤러리아 포레에는 수십억원이 아깝지 않을 만큼의 독특한 뭔가가 있다"고 설명했다.

초고가 아파트라 소수의 핵심 집단들이 모여 살고 있는 만큼 단지 내에는 특별한 커뮤티니가 형성돼 있다. 입주민 모임을 통해 비즈니스가 이뤄지거나 개인 간의 재산거래, 인적 네트워크, 재테크 정보 등 수많은 정보가 공유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입주민 한 명이 대규모 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입주민들에게 투자를 권해 공동사업을 추진하기도 했으며, 입주민을 통해 단기간에 거액의 사업자금을 모은 사례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장 소장은 장 누벨이 내부 설계를 맡을 당시의 일화를 소개했다. 장 누벨은 아랍문화원, 아그바타워, 두바이 루브르 박물관, 리움미술관 등을 설계한 현존하는 최고 건축가 중 한 명이지만 그가 갤러리아 포레에서 맡은 것은 단순히 내부 디자인뿐이었다.

"이런 유명한 건축가에게 외관을 제외한 실내의 한 부분만 설계해달라고 하는 것은 사실 실례죠. 하지만 서울숲공원에 들어선다는 것과 파리의 센 강보다 아름다운 한강이 단지 바로 앞에 펼쳐진다는 것을 적극 홍보하며 설득했습니다."

결국 입지적 환경에 매력을 느낀 장 누벨은 "나의 철학을 한국의 귀족들에게 보여주겠다"며 기꺼이 승낙했다고 한다.

장 소장은 분양소장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에 비유했다. 지휘자의 손끝을 통해 악기 하나하나가 모여 한 곡을 완성하는 것처럼 분양 현장은 아르바이트생 교육부터 분양가격 협상 등 처음부터 끝까지 분양소장의 손을 거쳐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일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그는 주저하지 않고 고객과의 신뢰를 꼽았다. 이렇다 보니 처음에는 분양소장과 고객으로 만났지만 나중에는 투자방향을 묻는 고객들이 생긴다. 장 소장은 "고객 중에 지금은 호형호제하며 지내는 분들도 있다"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