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성대 기자 = 박정희 정권 시절 억울하게 국가에 땅을 빼앗긴 서울 구로동 일대 농민과 유족들이 소송 제기 47년만에 국가로부터 사상 최대의 배상금을 받게 됐다.

서울고법 민사합의9부(재판장 강민구)는 백모씨 등 291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청구소송 파기환송심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하고 "국가는 원고들에게 지연이자를 포함한 손해배상감 110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고 20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들이 해당 토지의 소유권을 취득하지 못하게 된 1988년 당시의 토지 시가를 기준으로 손해배상액을 산정했으며, 이때부터 판결 선고시까지 연 5%의 이자를 가산해 지급하도록 명령하면서  국가가 지급해야할 배상금은 1100억여원이다.

이는 단일 사건 소송에서 최대 금액이다.

재판부는 "백씨 등은 정부의 불법구금, 폭행 등 가혹행위 과정에서 소를 취하했다"며 "소 취하는 의사없이 겉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효력이 없어 사건은 법원에 (현재까지) 계속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백씨 등은 정부의 조직적인 불법행위, 범죄행위 등 때문에 분배받은 농지의 대가를 상환하지 못해 농지에 대한 권리를 잃었다"며 "백씨 등은 토지의 가격에 상당하는 손해를 입어 정부는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박정희 정권은 1961년 9월 산업진흥 및 난민정착 구제사업의 일환으로 서울 구로동 일대에 수출산업공업단지를 조성하면서 농민들을 강제로 쫓아냈는데 이후 농민들은 1967년 3월 “해당 토지는 농지개혁법에 따라 적법하게 분배 받은 것”이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인용 판결을 받았지만, 1969년 4월 항소심에서 ‘농지 분배를 인정받기 위한 절차를 거쳤는지 알 수 없다’는 이유로 패소했고, 다음해 대법원은 다시 “농지개혁법에 따라 분배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이후 서울고법이 이 사건 파기환송심을 심리하던 1970년 5월 박 전 대통령이 “정부가 패소하지 않도록 가능한 조치를 취하라”고 법무부 장관에 지시하면서 검찰과 중앙정보부는 농민들에게 소송 사기 혐의를 뒤집어 씌우고 수사 과정에서 “감옥 갈래, 소송 포기할래”라고 협박했다.

심지어 소송을 취하하지 않은 41명을 형사재판에 넘기기도 하면서 이 사건 농민들의 경우 예외 없이 소를 취하했다.

하지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08년 7월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나서 1970년 멈춘 소송을 다시 진행해달라고 법원에 신청했고, 재판부는 재심을 거치지 않은 채 백씨 등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한편 이 사건 이전 국가 배상 최대액수는 2007년 8월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희생자와 유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결정된 245억여원으로 이자까지 더하면 총 637억여원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