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중국역사> 중국 女 스피드스케이팅 동계올림픽 최초 금메달 획득
2014-02-09 18:09
아주경제 한오종 기자 =
▲2월10일(월) - 1947년, 상해발 골드러시 발발
상해에서 금값이 폭등하는 현상이 발발했다.
국민당 정부는 한차례의 큰 내전을 준비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경제전망을 어둡게 바라보았다. 이에 따라 경제를 반영하는 척도인 금융이 영향을 받게 되었다.
2월1일 금값은 1량에 40.6만 위안(구 화폐)이었으나 2월8일 금값은 1량에 55만 위안을 돌파했고 2월 10일에는 96만 위안이 되었다. 무려 열흘 만에 2배 이상 뛴 것이었다.
국내 화폐 가치가 떨어지면서 생필품 가격도 큰 폭으로 올랐고 톈진, 난징 등 대도시를 시작으로 사람들은 앞 다투어 황금과 달러를 매수하기 시작했다.
1958년 2월 11일 한자병음방안이 제1회 전인대 제5차회의에서 채택되었다.
한자병음방안은 한자의 음을 지금과 같이 로마자(알파벳)로 표기하는 방식을 말한다. 한자병음방안을 수립하고 한자의 간체화를 추진한 사람은 중국 문자개혁위원회 주임 우위장(吳玉章)이었다.
이와 함께 전인대는 한자의 간체화, 푸퉁화(普通話) 보급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며 한자병음방안을 한자 학습에 활용토록 했다.
▲2월13일(목) - 1980년, 중국 동계올림픽 최초 참가, 女100m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 획득
중국이 미국 뉴욕주 레이크플래시드에서 개최된 제13회 동계올림픽에 최초로 참가했다. 남녀 28명의 선수를 파견했으며 5개의 종목에 참가했다. 중국은 최초로 참가한 이 대회에서 아무도 10위 안에 들지 못하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며 세계의 벽을 실감했다.
그러나 8년후인 1988년 2월13일에 캐나다 캘거리에서 개최된 제15회 동계올림픽에서는 여자 100m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리앤(李琰)이 중국 역사상 최초로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2월13일(목) - 1912년, 쑨원 위안스카이에게 총통 양보
쑨원(孫文)이 임시 대총통직을 사임하고 위안스카이(袁世凱)를 후임으로 추천했다.
1911년 10월 10일 신해혁명(辛亥革命)이 일어나자 쑨원의 혁명세력은 1912년 1월 1일 난징(南京)에 임시정부를 수립 쑨원을 임시 대총통에 추대하고 중화민국을 성립했다.
한편 청조는 북양군벌의 지도자 위안스카이를 기용 혁명군의 토벌을 명하여 남북의 군사적 대결구도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쑨원은 열강세력의 간섭과 혁명파 내부의 분열 등으로 인해 혁명의 철저화가 곤란한 상황이었고 위안스카이는 모든 성이 독립을 선언하는 혁명적 상황을 거스를 수 없는 처지였다.
상대방을 완전히 제압할 수 없다고 인식한 양측은 타협책으로 선통제(宣統帝) 푸이(溥儀) 퇴위와 함께 공화정을 수립하는 대신 대총통의 지위는 위안스카이가 맡기로 합의했다. 쑨원과 위안스카이의 이러한 합의에 따라 만주족의 청조는 종결을 맞이하고 중화민국이 성립됐다.
이로써 중국 역사 2000여년을 이어온 봉건군주제도가 막을 내렸다.
▲2월16일(일) - 1932년, 만주국 성립
1931년 만주사변(9.18 사변)을 일으켜 중국을 침략한 일본은 헤이룽장(黑龍江), 지린(吉林), 랴오닝(遼寧) 등 중국의 동북 3개성을 점령한 뒤 '동북최고행정위원회‘를 설치하고 만주국의 성립을 선포했다. 일제는 만주국의 수도를 창춘(長春)으로 하고 연호를 ‘대동(大同)’으로, 국가 원수를 집정(執政)으로 하였다.
1934년 3월 1일에는 푸이를 황제에 취임시켜 연호를 강덕(康德)이라하고 창춘을 신징(新京)으로 개명했다. 국호도 ‘만주제국’이라고 바꾸었다.
일본의 괴뢰국으로 세워진 만주국은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폐퇴까지 13년 6개월 동안 존속했다.
당시 민주 지역의 지배자는 훗날 장제스의 오른팔이 되는 장쉐량(張學良)이었다. 그는 세습군벌로 장제스(蔣介石)의 북벌군에 대항하지 않고 1928년 12월 투항했다. 그 결과 그의 군대는 국민정부군에 편입되었고 만주의 반독립적 지배자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다.
공산당 토벌에 전력을 집중하던 장제스는 장쉐량에게 일본군과 싸우지 말고 만주 지역 밖으로 퇴각을 명령했다.
장제스는 먼저 내부를 안정시킨 뒤 외세, 즉 일본과 대결한다는 전략이었다. 이 때문에 일본군은 만주를 신속하게 점령했고 만주국을 세우기에 이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