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구한 운명 100년간 해외 떠돌던 조선불화 고국품에 왔다

2014-01-08 08:40
,미 허미티지박물관 천장에 40년간 매달린채 보관..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돌려받아

조선불화. 비단에 채색.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100년간 해외를 떠돌던 조선불화가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왔다.

 가로·세로 각 3m가 넘는 18세기 조선후기 대형불화는 일제강점기에 무단으로 뜯겨 일본에 반출돼 기구한 운명이 시작됐다.

일본에서 미국으로 유랑하다 경매에 나와 유찰을 거듭했고, 결국 450달러에 박물관에 팔려 40년간 박물관 천장에 매달린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에 따르면 7일 미국 버지니아주 노포크에 소재하는 허미티지박물관(Hermitage Museum & Gardens) 소장 조선시대 비단 채색 불화 1점을 문화재지킴이 미국계 기업인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의 도움을 빌려 돌려받았다.

 이날 오전 국립중앙박물관 사진실에서 언론에 공개한 불화는 크기가 318.5㎝×315㎝의 대형이라 사찰 대웅전에서 후불탱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석가모니의 설법장면을 파격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학술적 가치가 큰 것으로 파악됐다.

 불화는 설법하는 석가모니 부처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그려넣고 10대 제자들인 아난존자와 가섭존자를 석가모니 앞에 강조해 넣은 석가삼존도형식이다.

조선불화 전문가들 분석에 의하면 이 불화는 석가모니 부처의 광배나 대의(大衣) 문양 등이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 양식이고, 삼존의 구도라든가 보살에 드러난 보관과 영락 장식을 볼 때 1731년 제작한 송광사 응진전 석가모니불도와 매우 유사한 점으로 미루어 제작시기는 1730년대로 추정된다고 재단은측은 설명했다.

조선불화 전문가인 김승희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과장은 "이 불화는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파격 도상이라 미술사적으로도 희귀할 뿐 아니라 학술적 가치도 매우높다"면서 "아난존자, 가섭존자, 석가모니 부처의 좌우 협시불 등 등장인물의 섬세한 표정 묘사 등은 일찍이 조선 불화에서 보기 드문 수작에 속한다"고 말했다.

■어떻게 떠돌게 됐나
이 불화는 일제 강점기 초반 국내 어느 사찰에서 무단으로 뜯겨 일본으로 반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미술품상 야마나카상회에 넘겨졌으며 일부분에 대해서는 수리와 보수가 있던 것으로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이어 불화는 1942년 미국 오하이오주 톨레도박물관(The Toledo Museum of Art)에 잠시 전시되면서 미국 내 미술관과 미술품 시장을 떠돌았다. 그러다가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개시된 태평양전쟁기 미국 정부가 미국 내 일본 재산의 몰수를 위해 설치한 '적국자산관리국'(Office of Alien Property Custodian, APC)에서 야마나카상회 소장 모든 미술품을 몰수하면서 이 불화 또한 같은 처지로 내몰린다.

미국 정부는 이렇게 몰수한 미술품을 모두 경매에 넘겼으며, 불화 또한 경매가 6500달러에 1943년 뉴욕 경매시장에 등장했다.

유찰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1944년 최종 낙찰가 450달러에 허미티지박물관에 팔려간 것으로 재단 조사 결과 드러났다.

재단은 "식민지 시절 뜯겨진 불화가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제2차 세계대전의 회오리에서 일본의 적산(敵産·적국의 재산)으로 낙인찍혀 미국 정부에 넘어간 뒤 미국의 박물관에 팔려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불화는 전시공간을 찾지 못한 채 보관되다가 1954년에는 버지니아주에 소재하며 현재는 크라이슬러박물관으로 이름을 바꾼 노포크박물관(Norfolk Museum ofArts and Science)에 20년 장기 대여 형태로 전시되기도 했다.

1973년 허미티지박물관에 돌아온 불화는 둥글게 말려 천장에 매달린 채 40년간 보관돼 있었다.

■고국품에 오게된 계기는?
 
존재가 국내에 알려진 과정은 극적이다. 무료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2011년 버지니아주박물관협회가 이 불화를 '위험에 처한 문화재 10선'에 선정하기도 했다.이 과정에서 훼손이 심해짐에 따라 박물관에서는 미국 내 문화재보수업체에 보존처리를 의뢰하려 한 일도 있었다. 당시 보수업체가 산정한 보수처리 비용은 7만5000달러. 하지만 허미티지박물관은 이 금액을 감당하지 못하고, 급기야 이 불화를 유튜브에 위험에 처한 유산에 올려 구원의 손길을 찾아나섰던 것이다. 

재단의 국외문화재 조사작업에서 존재가 확인하고, 이어 반환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반환 협상은 문화재청의 '한 문화재 한 지킴이' 사회공헌활동에 동참한 미국계기업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Riot Games Korea)가 허미티지박물관에 박물관 운영기금을 기부하기로 함으로써 성사됐다.

유튜브를 떠돌던 이 동영상이 마침내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눈에 띄게 되고, 현지조사와 지루한 반환 협상을 거쳐 마침내 지난해 12월19일 고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한편 재단은 이번 불화 조사과정에서 미국정부에서 강제압류한 야마나카상회 목록 일부를 확인했다면서 이에 대한 추가 조사를 벌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