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기(氣)를 살리자>독창적발상·과감한 실천···경제부흥 1세대 정신 되살려야

2013-11-18 06:00
(2) 기업가 정신을 살려라

아주경제 채명석ㆍ박재홍 기자 = 1969년 말 착공해 1년 10개월 만에 준공한 미국 알래스카의 허리케인 브리지.

알래스카 북부 유전 및 자연자원 개발을 위해 앵커리지와 내륙 중심도시 페어뱅크스를 잇는 고속도로의 일부분으로 지어진 이 다리는 당시 현대건설이 미국 영토 안에서 처음으로 수주한 공사였다.

북미대륙에서 가장 높다는 매킨리산 기슭 고원지대의 허리케인 협곡을 가로지르는 지점에 설치하는 험난한 공사환경, 교통은 물론 통신 등 관련 인프라가 전무해 미국 건설업자도 꺼려했던 공사를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지시로 응찰해 따냈다. 미국 주정부 공사는 대부분 미국 원자재를 사용해야 하고, 기술자와 노무자 모두 미국인을 채용해 공사를 해야 하는 조건도 마다하지 않고 정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폭 9.7m, 길이 171m의 아치형 다리 철판 원자재는 미국 카이저스틸에서 수입해 부산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 작업장에서 제조했고, 이를 한라해운의 선박으로 앵커리지까지 운반한 다음 150㎞나 떨어진 현장에서 비포장도로로 육상운송해 야생곰들이 출몰하는 황량한 현장에서 조립과 설치를 했다.

현대그룹은 결국 이 공사에서 손해를 봤다. 하지만 40년이 지난 지금 허리케인 브리지는 알래스카의 주요 관광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관광객들은 가이드들로부터 이 다리를 현대건설이 만들었다는 설명을 듣는다고 한다. 무모한 도전이라 불렸지만 이 공사를 수행한 정 회장의 속내는 아마도 초강대국 미국의 원조를 받은 한국에서 탄생한 기업이지만, 언젠가는 미국을 넘어서고 싶다는 의지와 욕망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의 바람이 완전히 구현된 것은 아니지만 한국은 여러 분야에서 미국을 압도했고,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미국이 아시아지역 국가 중 최초로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이유도 한국의 경제적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한국 경제성장을 위해 창업주와 최고경영자(CEO), 임직원들이 전 세계를 누비며 비즈니스를 성공시켰고, 그 일화는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갖가지 성공신화를 일궈낸 이들의 공통점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남들은 주저했던 행동을 실천했다'는 것이다. 이를 우리는 도전적 '기업가 정신'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창업주 이후 2세대·3세대 기업인들의 성공사례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부가 축적되면서 모든 일상이 풍요로워졌지만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충격을 겪으며, 도전과 모험보다는 안정을 선호하게 됐다. 공무원 취직을 선호하는 등 창업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로 치부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현재의 기업 총수나 CEO들이 연일 검찰의 수사 대상으로 불려나가면서 기업과 기업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도 사업가의 길로 나서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고 있는데, 특히 일부 시민단체들은 한국의 기업가 정신은 부패와 부정을 불러일으킨 사라져야 할 유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창조경제의 대표적 사례로 부각되고 있는 이스라엘. 이 나라의 정부와 산업 관계자들은 오히려 한국의 대기업 문화를 벤치마킹 하고 싶어한다. 이스라엘의 기술·벤처기업 창업자들은 창업과 동시에 기업공개(IPO)를 한 뒤 미국 등의 대기업에 회사를 매각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문제는 이들 기업인 모두 자기 기업을 끝까지 책임지고 키우려는 의지가 없다고 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이스라엘에는 대기업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고민이라는 말을 들었다. 20년이 걸리든 30년이 걸리든 한 기업을 끝까지 키워내겠다며 CEO의 자리를 내놓지 않는 한국 기업인들의 문화를 어떻게 하면 자국 기업인들에게 설득시킬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고 한다"며 "한국 기업인들의 무한책임 의식은 회사에 해를 끼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기업이 어떤 도전도 해쳐나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했고, CEO가 앞에 나서 뛰어다니기 때문에 성공사례를 도출해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현재 기업가 정신의 후퇴현상은 창업에 대한 두려움이 심화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시 말해 심리적 위축 현상을 개선해줘야 한다는 것으로, 기업가에 대해 사회적 대우를 높여줌으로써 창업에 대한 열의를 키워주고, 실패한 기업인들이 재도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 경험과 노하우가 사장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가 정신은 경영자들에게만 통하는 단어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이들이 품고 가슴 설레는 상징이 돼야 한다"며 "남녀노소에 관계없이 도전과 열정, 혁신과 변화, 창의와 공존의 마인드를 가시화하는 일이 생활화된다면 경제위기 탈출은 물론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실현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