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인터뷰> 감독 한재림이 밝히는 ‘관상’ 배우 이야기
2013-09-26 14:01
“이정재 <하녀>, 이종석 <코리아> 보고 캐스팅…김의성 원 풀어”
사진=이형석 기자 |
관상을 타이틀로 걸고,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든 인물들의 ‘운명’ 타파를 촘촘한 연출로 엮어 관객들에게 큰 즐거움을 주고 있는 한재림 감독을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는데 이름이 파툼(fatum·운명)이다.
사진=영화 '관상' 스틸컷. ㈜주피터필름 제공 |
사진=영화 '관상' 스틸컷. ㈜주피터필름 제공 |
김의성은 수양의 왕위찬탈을 돕는 지략가 한명회를 연기했다. 영화가 막바지에 치달을 때까지도 검은 그림자 속에 얼굴을 감추고 실루엣으로 연기하지만, 거슬리는 위압적 목소리로 내경을 위협하고 김종서의 목을 죈다. 훌륭한 배우의 좋은 쓰임이 반가워 던진 질문이었다.
“김의성 배우를 물어봐 준 건 처음이네요. 정말 대단한 배우죠. 형님을 처음 본 건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예요. 말 그대로 제게는 충격의 영화였어요. 한국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영화에 감탄했고 주연을 맡아 놀라운 연기력을 보여 준 김의성이라는 배우에게 매료됐어요. 언젠가 꼭 한 번 함께해 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원을 풀게 됐네요. 말씀하신대로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아니 그래서 더욱 내공이 큰 배우가 해야 하는 역할이었어요, 한명회는. 다행히 형님이 흔쾌히 수락해 주셔서 제가 이번에 덕을 많이 봤습니다.”
사진=영화 '관상' 스틸컷. ㈜주피터필름 제공 |
영화 <관상>의 제작 소식을 접했을 때 가장 기대가 되는 건 감독 한재림과 배우 송강호의 재회였다. 송강호는 한재림이라는 물을 만나면 물고기가 된다. <우아한 세계>를 통해 보여 준 아버지들의 세상. 언뜻 조직폭력배 이야기로 보이지만, 목숨 내놓고 싸우는 조폭처럼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아버지들의 삶이 비릿한 감동을 안겼다. 아버지라는 클래식한 소재를 느와르라는 새 그릇에 담으니 낯설어 신선했고, 전에 본 적 없는 것은 아니라 쉽게 관객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조폭 노릇으로 기러기 아빠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강인구가 TV를 보며 라면을 먹던 적적한 모습, 방바닥에 엎질러진 라면 국물을 허둥대며 닦는 뒷모습을 이보다 애잔하게 연기할 배우가 있을까 싶게 배우 송강호의 날 것 같은 연기는 울림이 컸다.
배우 송강호는 감독 봉준호와 만날 때 가장 빛난다 싶었는데, <우아한 세계>에 이어 <관상>으로 그 순위가 뒤바뀌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한 감독이 손사래를 친다. <우아한 세계>라는 강을 건너 <관상>이라는 바다에 다다른 송강호가 보이는데 말이다.
“좋게 봐 주신 것 같아 감사하네요. 그래도, 어디요.”
<우아한 세계>를 통해 합을 확인했으니 당연히 <관상>도 송강호였던 거냐고 묻자, 또 손사래를 친다.
“제가 어찌 대한민국 최고라 하는 강호 선배님을 당연히 부르고 또 당연히 응해 주실 수 있겠어요. 물론 시나리오 원안을 읽으며 강호 선배님이 하면 좋겠다 싶긴 했지만 조심스레 청했지요. 역시나 맞는 생각이었어요. 촬영을 하면서, 또 마무리 된 영화를 보며 내경을 이보다 잘할 배우가 있을까 싶게 너무나 좋은 연기를 보여 주셨어요. 영화 초반에 연홍이 찾아 왔을 때 허름한 옷을 입어도 감춰지지 않는 비범함, 기생 끼고 흥청망청 놀다가 단종을 지키겠다고 운명에 맞서 싸우러 달려 나가도 그 변화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유연함, 정말 설명이 필요 없는 최고의 배우지요.”
사진=영화 '관상' 스틸컷. ㈜주피터필름 제공 |
“수양을 놓고는 고민이 많았어요. 역사적으로 정치적 숙적인 김종서를 연기한 백윤식 선생님이 보통 카리스마가 아니잖아요, 그에 밀려서도 안 되고. 영화 안에서는 또 왕이 될 수양의 운명을 거스르려는 내경과 겨루는 폭이니 송강호 선배님한테 뒤져서도 안 되고요.”
뿐만이 아니었다. <관상> 속 수양대군은 조카를 죽이고 왕이 되는 비열함을 지닌 동시에 왕족이자 실존했던 왕으로서의 고결한 품위가 함께 배어 있는 인물이어야 했다. 한 감독의 눈에는 이정재가 들어왔다.
“물망에 오른 여러 배우가 있었는데 저는 이정재라는 배우가 적격이다 싶었어요. 영화 <하녀>의 훈을 통해 보여 준 이미지에서 수양을 본 거죠. 어떠한 순간에도, 아무리 비열하고 지촐하게 구는 순간에도 재벌로서의, 로열층의 느낌이 흐르잖아요. 송강호 선배도 ‘이정재 어떠냐’ 추천해 주셨고요.”
걱정도 있었다. “영화 시작하고 한참 지나야 나오잖아요. 싫다 하면 어쩌나 했는데 의외로 개의치 않으시더라고요. (늦게 나오지만 굉장히 돋보이게 연출해서 존재감은 등장 순서와 무관했다고 말하자) 내러티브상으로도 수양에게서는 남과 다른 빛이 나야 했고, 또 감사한 마음에 첫 등장 신에 힘을 실었습니다.”
한 감독은 이정재의 성실한 고민과 준비에 대해 호평했다. “수양에 대해서 정말 많은 걸 고민하고 현장에 오시더라고요. 굉장히 진지하고 치열하게 캐릭터에 임하는 배우라는 걸 느꼈어요. 그렇게 함께 수양을 만들어 갔는데, 본인이 뭘 준비해 왔든 제가 다른 걸 요구하면 또 그대로 해 보여 주세요. 감독의 의견을 굉장히 존중하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b>그리고: <관상>의 주역들</b>
사진=영화 '관상' 스틸컷. ㈜주피터필름 제공 |
사진=영화 '관상' 스틸컷. ㈜주피터필름 제공 |
사진=영화 '관상' 스틸컷. ㈜주피터필름 제공 |
사진=영화 '관상' 스틸컷. ㈜주피터필름 제공 |
사진=영화 '관상' 스틸컷. ㈜주피터필름 제공 |
한재림 감독이 자식을 대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연출해 낸 캐릭터와 그 뜻을 스크린 위에 실현해 낸 배우들. 순조의 궁합이 호조의 흥행을 만들어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