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인터뷰> 감독 한재림이 밝히는 ‘관상’ 배우 이야기

2013-09-26 14:01
“이정재 <하녀>, 이종석 <코리아> 보고 캐스팅…김의성 원 풀어”

사진=이형석 기자
아주경제 홍종선 기자= 25일까지 730만명이 영화 <관상>을 봤다. 파죽지세다. 개봉 후 보름 동안 흔들림 없이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다.

관상을 타이틀로 걸고,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든 인물들의 ‘운명’ 타파를 촘촘한 연출로 엮어 관객들에게 큰 즐거움을 주고 있는 한재림 감독을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는데 이름이 파툼(fatum·운명)이다.

사진=영화 '관상' 스틸컷. ㈜주피터필름 제공
영화 <의형제> 이후 오랜만에 특유의 느슨하면서도 쫄깃한 연기로 ‘대체 가능하지 않은’ 존재감을 과시하는 송강호(관상을 통해 세상을 읽는 내경), 영화 시작 1시간 만에 등장하고서도 피비린내 나는 잔인함과 왕족의 기품을 동시에 표출시키며 관객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정재(왕이 될 수양대군), <건축학개론>의 납득이 캐릭터를 넘어서는 능청과 진정성 있는 애환을 연기한 조정석(내경의 입 싼 처남 팽헌),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인기로 흥행에 한 삽을 보태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기대 이상의 정극 연기로 탄탄한 기초 실력을 입증한 이종석(내경의 절름발이 아들 진형), 말하지 않아도 뿜어 나오는 카리스마로 장차 왕이 될 수양과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하는 백윤식(어린 단종을 지키는 장군 김종서), 길지 않은 출연에도 내공 있는 배우의 저력이 무엇인가를 보여 준 김태우(단종 걱정에 잠을 못 이루는 문종)와 김혜수(내경을 한양으로 불러올리는 기생 연홍)까지 배우 복 터진 감독에게 가장 먼저 물어 본 배우는 김의성이었다.

사진=영화 '관상' 스틸컷. ㈜주피터필름 제공
<b>먼저: 김의성</b>

김의성은 수양의 왕위찬탈을 돕는 지략가 한명회를 연기했다. 영화가 막바지에 치달을 때까지도 검은 그림자 속에 얼굴을 감추고 실루엣으로 연기하지만, 거슬리는 위압적 목소리로 내경을 위협하고 김종서의 목을 죈다. 훌륭한 배우의 좋은 쓰임이 반가워 던진 질문이었다.

“김의성 배우를 물어봐 준 건 처음이네요. 정말 대단한 배우죠. 형님을 처음 본 건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예요. 말 그대로 제게는 충격의 영화였어요. 한국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영화에 감탄했고 주연을 맡아 놀라운 연기력을 보여 준 김의성이라는 배우에게 매료됐어요. 언젠가 꼭 한 번 함께해 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원을 풀게 됐네요. 말씀하신대로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아니 그래서 더욱 내공이 큰 배우가 해야 하는 역할이었어요, 한명회는. 다행히 형님이 흔쾌히 수락해 주셔서 제가 이번에 덕을 많이 봤습니다.”

사진=영화 '관상' 스틸컷. ㈜주피터필름 제공
<b>당연히: 송강호</b>

영화 <관상>의 제작 소식을 접했을 때 가장 기대가 되는 건 감독 한재림과 배우 송강호의 재회였다. 송강호는 한재림이라는 물을 만나면 물고기가 된다. <우아한 세계>를 통해 보여 준 아버지들의 세상. 언뜻 조직폭력배 이야기로 보이지만, 목숨 내놓고 싸우는 조폭처럼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아버지들의 삶이 비릿한 감동을 안겼다. 아버지라는 클래식한 소재를 느와르라는 새 그릇에 담으니 낯설어 신선했고, 전에 본 적 없는 것은 아니라 쉽게 관객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조폭 노릇으로 기러기 아빠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강인구가 TV를 보며 라면을 먹던 적적한 모습, 방바닥에 엎질러진 라면 국물을 허둥대며 닦는 뒷모습을 이보다 애잔하게 연기할 배우가 있을까 싶게 배우 송강호의 날 것 같은 연기는 울림이 컸다.

배우 송강호는 감독 봉준호와 만날 때 가장 빛난다 싶었는데, <우아한 세계>에 이어 <관상>으로 그 순위가 뒤바뀌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한 감독이 손사래를 친다. <우아한 세계>라는 강을 건너 <관상>이라는 바다에 다다른 송강호가 보이는데 말이다.

“좋게 봐 주신 것 같아 감사하네요. 그래도, 어디요.”

<우아한 세계>를 통해 합을 확인했으니 당연히 <관상>도 송강호였던 거냐고 묻자, 또 손사래를 친다.

“제가 어찌 대한민국 최고라 하는 강호 선배님을 당연히 부르고 또 당연히 응해 주실 수 있겠어요. 물론 시나리오 원안을 읽으며 강호 선배님이 하면 좋겠다 싶긴 했지만 조심스레 청했지요. 역시나 맞는 생각이었어요. 촬영을 하면서, 또 마무리 된 영화를 보며 내경을 이보다 잘할 배우가 있을까 싶게 너무나 좋은 연기를 보여 주셨어요. 영화 초반에 연홍이 찾아 왔을 때 허름한 옷을 입어도 감춰지지 않는 비범함, 기생 끼고 흥청망청 놀다가 단종을 지키겠다고 운명에 맞서 싸우러 달려 나가도 그 변화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유연함, 정말 설명이 필요 없는 최고의 배우지요.”

사진=영화 '관상' 스틸컷. ㈜주피터필름 제공
<b>이번엔: 이정재</b>

“수양을 놓고는 고민이 많았어요. 역사적으로 정치적 숙적인 김종서를 연기한 백윤식 선생님이 보통 카리스마가 아니잖아요, 그에 밀려서도 안 되고. 영화 안에서는 또 왕이 될 수양의 운명을 거스르려는 내경과 겨루는 폭이니 송강호 선배님한테 뒤져서도 안 되고요.”

뿐만이 아니었다. <관상> 속 수양대군은 조카를 죽이고 왕이 되는 비열함을 지닌 동시에 왕족이자 실존했던 왕으로서의 고결한 품위가 함께 배어 있는 인물이어야 했다. 한 감독의 눈에는 이정재가 들어왔다.

“물망에 오른 여러 배우가 있었는데 저는 이정재라는 배우가 적격이다 싶었어요. 영화 <하녀>의 훈을 통해 보여 준 이미지에서 수양을 본 거죠. 어떠한 순간에도, 아무리 비열하고 지촐하게 구는 순간에도 재벌로서의, 로열층의 느낌이 흐르잖아요. 송강호 선배도 ‘이정재 어떠냐’ 추천해 주셨고요.”

걱정도 있었다. “영화 시작하고 한참 지나야 나오잖아요. 싫다 하면 어쩌나 했는데 의외로 개의치 않으시더라고요. (늦게 나오지만 굉장히 돋보이게 연출해서 존재감은 등장 순서와 무관했다고 말하자) 내러티브상으로도 수양에게서는 남과 다른 빛이 나야 했고, 또 감사한 마음에 첫 등장 신에 힘을 실었습니다.”

한 감독은 이정재의 성실한 고민과 준비에 대해 호평했다. “수양에 대해서 정말 많은 걸 고민하고 현장에 오시더라고요. 굉장히 진지하고 치열하게 캐릭터에 임하는 배우라는 걸 느꼈어요. 그렇게 함께 수양을 만들어 갔는데, 본인이 뭘 준비해 왔든 제가 다른 걸 요구하면 또 그대로 해 보여 주세요. 감독의 의견을 굉장히 존중하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b>그리고: <관상>의 주역들</b>

사진=영화 '관상' 스틸컷. ㈜주피터필름 제공
한재림 감독이 배우들이 하나하나에 호평에 극찬, 감사를 전하는 모습에서 흡사 열 손가락 가운데 안 아픈 손가락 없는 부모 마음이 보였다.

사진=영화 '관상' 스틸컷. ㈜주피터필름 제공
“사실 백윤식 선생님 출연 분량이 많지 않아요. 보시는 분들은 잘 못 느끼실 걸요. 워낙 카리스마가 대단해서요. 정석 씨 연기를 두고 납득이 때랑 비슷하다고 하는 분들이 있는 것도 알아요. 워낙 송강호 선배님이랑 변죽을 착착 맞춰 가며 맛있게 연기한 부분이 크게 남아서 그럴 텐데, 진한 감정연기도 제대로 보여 주는 장면도 많습니다. 앞으로 잘될 친구라고 생각해요.”

사진=영화 '관상' 스틸컷. ㈜주피터필름 제공
“이종석 군은 행운이죠. 캐스팅했을 때보다 훨씬 스타인 친구니까요. 이렇게 될 줄 알았던 안목이 있었다기보다는 훤칠한 청년이 장애를 갖는다면 그 대비에서 오는 한이 더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결정한 거예요. 영화 <코리아>에서 북한선수로 나온 걸 보고 기억해 뒀던 배우거든요.”

사진=영화 '관상' 스틸컷. ㈜주피터필름 제공
한 감독은 김혜수에 대해 “등장 신이 많지 않더라도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잖아요. 세상 밖 내경을 세상 속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이고, 눈치 하나로 사내들의 세상을 후리는 인물이고요. 그러자면 나이가 어느 정도 있어야 하는데 화려한 의상이 어울리는 기녀의 섹시미도 갖춰야 했어요. 그런 중량감을 가진 배우, 김혜수 씨 말고 또 있던가요”라고 말하며 만족스러워 했다.

사진=영화 '관상' 스틸컷. ㈜주피터필름 제공
김태우에 대해서도 “워낙 연기 잘하는 줄 알았지만 또 새로운 얼굴을 본 것 같아요. 아들 걱정에 눈을 제대로 감지 못하는 부정을 절절히 잘 연기해 주셨고요. 왕이잖아요, 제 욕심이겠지만 무명의 지긋한 배우보다는 인지도 높은 배우가 그 격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출연해 주셔서 너무 좋았어요. 병석에서도 왕의 위엄을 드러내는 목소리를 원하는 저를 위해 재차 후시 녹음을 위해 발걸음 해 주셨고요. 감사할 뿐입니다”라고 영화의 격을 높여 준 데 대해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한재림 감독이 자식을 대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연출해 낸 캐릭터와 그 뜻을 스크린 위에 실현해 낸 배우들. 순조의 궁합이 호조의 흥행을 만들어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