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수 회장이 사임 택한 이유?…“회사를 살리는 게 더 우선”

2013-09-09 17:06
강 회장 “경영권 집착 욕심으로 비춰지는 게 가슴아팠다”<br/>STX그룹 계열사에서도 연쇄 퇴진 가능성 높아

강덕수 STX그룹 회장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지난 1주일간 악몽과 같은 시간을 보내셨을 텐데, 오늘은 모든 것을 정리한 듯 홀가분해 하는 모습이었다.”

9일 오후 STX조선해양 이사회 장소에 참가한 강덕수 STX그룹 회장을 지켜본 회사 한 관계자는 현장의 모습을 이렇게 전했다.

이날 열린 이사회는 당초, 외부에서 보기에 사전 예고 없이 진행된 채권단의 대표이사 교체 건에 대해 강 회장이 마지막 저항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됐고, 그만큼 긴장감이 감돌았다. 자율협약에 반하는 채권단의 대표이사 사의 요청에 대해 업계의 반감이 컸던 만큼 강 회장과 그룹측이 “월권행위”라고 반발했고, 함께 일해 온 사외이사들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강 회장을 신뢰하는 인사들이 있다는 점에서 일말의 기대감을 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강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이사회는 사실상 강 회장이 사임을 밝히는 자리로 진행됐다는 후문이다.

강 회장과 신 사장, 조정철 기획관리본부장 등 3명의 사내이사와 정경채 전 산업은행 부행장 등 사외이사 4명 등 이사회 구성원 전원이 참석한 이날 이사회에서는 예정대로 박동혁 대우조선해양 부사장과 유정혁 STX조선해양 부사장(조선소장)의 STX조선해양 등기이사 선임, 박 부사장의 대표이사 선임 건이 상정됐다. 1시간여 진행된 회의에서 표결을 앞둔 강 회장은 “채권단 의견을 존중해 달라. 회사를 살리는데 뜻을 모아달라”고 밝혀 참석자들에게 밝혀 사실상 사임의사를 밝혔다.

일부 사외이사가 채권단이 강 회장에게 재기의 기회가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지만, 강 회장이 “사사로움이 없을 수 없지만 회사를 살리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대승적으로 채권단의 뜻에 따르겠다”며 오히려 사외이사들을 설득시켰고, 강 회장의 뜻을 확인한 참석자들은 만장일치로 안건을 통과시켰다.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자 했던 강 회장이 마음을 바꾼 이유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백의종군’해 회사 회생에 기여하겠다는 그의 바람이 시간이 갈수록 개인적인 ‘욕심’으로 비쳐진데 대해 큰 부담감을 느꼈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STX그룹 관계자는 “강 회장은 부실 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고통을 받은 회사 임직원들과 국민들에게 회사를 회생시키고자 하는 마음으로 최고경영자(CEO)로서의 직분을 다하기 위함이었지 그룹을 끝까지 당신의 것으로 가지고 싶어한 것은 아니었다”며 “이러한 마음이 제대로 이해를 구하지 못했고, 자칫 회사에 또 다른 피해가 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마음에 퇴진을 굳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는 27일 임시주주총회를 통해 대표이사 선임안이 최종 결정되면 STX조선해양은 박 부사장 체제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미 채권단이 박 부사장에게 대대적인 회사의 구조조정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회사를 일신시키기 위한 후속 조치도 곧바로 이뤄질 전망이다. 타 회사의 사례를 봤을 때 대표이사가 교체되면 경영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곧바로 임원 인사가 이어진다는 점을 놓고 볼 때 이미 인선작업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사측과 노조간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STX조선해양 노조는 강 회장 체제에서 구조조정을 위한 채권단과의 자율협약을 체결하는 데 있어 노조가 동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강 회장을 퇴진 시킨 채권단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또한 강 회장의 거취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채권단은 STX조선해양에 이어 강 회장이 등기임원으로 올라 있는 (주)STX와 STX엔진 등 타 계열사에서도 물러나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강 회장의 개인회사지만 STX그룹 지분구조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포스텍에도 압박을 가하는 등 STX그룹에서 ‘강덕수 색깔 지우기’는 확산되고 있다.

일단 STX그룹측은 “STX그룹의 경영권은 이번 STX조선해양의 신규 이사 선임과는 별개의 문제”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으나 강 회장에 대한 강제 퇴진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