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 창립자 신용호 10주기…"보험의 새 역사를 쓰다"
2013-09-04 16:17
대산 고 신용호 선생이 생전에 직원들을 교육하던 모습. |
교보생명은 4일 대산 신용호 선생의 10주기를 맞아 학술 심포지엄과 추모의 밤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했다.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추모의 밤 행사에는 재계, 학계, 업계, 유관기관 등 각계각층의 주요 인사들이 참석해 대산의 추모의식, 추모시 낭송, 추모 공연 등이 진행됐다.
앞서 이날 낮 광화문 KT빌딩에서 열린 학술 심포지엄에서 남상욱 서원대 교수는 "대산이 세계 최초로 창안한 교육보험은 국가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국가 경제성장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물론, 물가 및 실업률 안정, 교육비 지출액 축소 등 경제안정에도 이바지했다"고 밝혔다.
대산 신용호 선생은 생명보험 외길 인생을 통해 '보험의 선구자, 보험의 대스승'으로 불리며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보험업계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2003년 9월, 8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대산의 삶을 관통했던 키워드는 다름 아닌 '국민교육'과 '교육입국'이었다.
이토록 그가 평생 지향했던 교육은 학교 교육을 뛰어넘는, 보다 포괄적이고 실전 체험을 통한 '산교육'이었다.
실제로 이력서의 최종 학력란에 '배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배운다'라고 썼던 대산은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배움의 대상이었다.
국민교육에 대한 그의 열정은 세계 최초의 교육보험을 탄생시켰으며, 서울 한복판 금싸라기 땅에 교보문고가 들어서게 했고 대산문화재단 등 3개 사회공익재단 설립으로 이어졌다.
국민교육 진흥과 민족자본 형성이라는 창립이념을 내세운 교보생명은 회사 이름부터 달랐다. 다른 생명보험사와 달리 생명보험이 아닌 교육보험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특히 그가 창립과 동시에 진학보험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한 교육보험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례없는 독창적인 보험상품이었다.
이 보험은 이후 30년간 300만명에 이르는 학생들에게 학자금을 지급했으며, 이렇게 교육의 기회를 얻게 된 인재들은 1960년 이후 우리나라 경제개발 시대의 주역으로 활약하게 된다.
대산의 국민교육에 대한 신념은 교보문고를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금싸라기 땅인 광화문 네거리에 돈도 안 되는 서점을 들이겠다고 했을 때 모두 반대했지만 대산은 "한국 제일의 목에 갈 곳 몰라 방황하는 청소년을 위한 멍석을 깔아주자"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마침내 1981년 단일면적으로 당시 세계 최대규모인 교보문고가 문을 열었다. 대산의 이러한 노력은 우리나라 독서인구 저변확대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대산은 대산농촌문화재단, 대산문화재단,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 등 3개 사회공익재단을 설립해 선진 농업 연구, 교육과 문학 지원사업, 장학사업 등을 펼치며 사회의 소외된 곳까지 지식의 뿌리가 내리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