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경제부처 대변인 어쩌다 ‘투명인간’이 됐나

2013-09-02 06:02
“아직 공과를 논하긴 이르지만...형만한 아우 없다”

아주경제 김진오·배군득·이규하·김선국·김정우·신희강 기자= 취임 6개월을 맞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과를 따지기엔 이르지만 ‘침묵과 불통’의 정부라는 부정적인 평가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야당은 물론 국민과의 소통 부재로 대통령의 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정책의 홍보 창구로 소통의 최전선에서 부처의 ‘입’으로 불리는 대변인들은 제 몫을 다하고 있는 것일까. 첫술에 배부르지 않는다는 속담처럼 맞지 않는 옷을 입어 낯설고 어색한 모습이 대부분이다. 벌써 전임 대변인에 대한 향수가 느껴질 만큼‘형만한 아우 없다’는 속설을 떠올리게 했다는 냉소적인 반응도 있다.

정부 집권 1년이 되는 앞으로 6개월 안에 대변인들의 명암은 뚜렷하게 엇갈릴 전망이다.

왼쪽부터 김용진 기획재정부 대변인, 민원기 미래창조과학부 대변인, 원동진 산업통상자원부 대변인, 남태헌 농림축산식품부 대변인, 김준범 공정거래위원회 대변인, 박광열 해양수산부 대변인, 박성희 고용노동부 대변인


1일 관가에 따르면 경제부처 대변인들이 정책홍보를 위한 소통활동에서 제각각 행보를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김용진 기획재정부 대변인은 초반부터 현오석 경제부총리의 광폭 현장행보를 그림자처럼 쫓으며 스킨십 강화에 나섰다. 왕성한 친화력으로 보폭을 넓히며 비교적 짧은 시간에 경제 컨트롤타워의 수문장으로 자리매김 했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조직 내부의 긴밀한 채널 역할을 통해 각 부서의 경쟁력을 높이고, 원활한 피드백 체제를 유치하는 데는 대변인으로서 아직 2%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치권과 여론의 뭇매를 자초한 세법개정안이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는 것. 국토해양부와 같이 부대변인 제도를 도입해 부담을 덜고 효율적으로 역할을 분담 하는 것이 대안이라는 의견이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다.

민원기 미래창조과학부 대변인은 초반 항상 웃는 낯으로 소통에 나서며 일단 '사람이 좋다'라는 호감을 샀다. 정보통신과 과학기술을 아우르는 '공룡부처'로 거듭난 미래부와 덩치가 커진 언론과의 경계선에서 서로 융화되기 힘든 간극을 좁히는 데 주력했다는 평가다. 사분오열된 조직에서 공보라인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한켠에서 그가 '사람만 좋다'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민 대변인은 틈만 나면 전 지식경제부 대변인을 지낸 권평오 산업통상자원부 무역투자실장을 멘토로 손꼽았다. 권 전 대변인은 유연한 상황 판단과 뛰어난 분석 능력으로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그는 폭넓은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부처 안팎에서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대언론 업무를 매끄럽게 처리했다.
1급 승진이라는 부산물도 얻으며 대변인 출신 전성시대를 열고 있다.

그러나 민 대변인은 최근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전권회의 의장으로 내정되면서 조만간 대변인의 바통을 넘겨주게 됐다. 대변인으로서 움츠렸던 날개를 펴기도 전에 새둥지를 트게된 셈이다.

원동진 산업부 대변인은 업무 처리가 무척 신중하고 쉽게 나서지를 않아 윗사람 눈치를 살피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부처 특성상 뛰어난 소통능력이 요구되는 자리라 더욱 도드라 보일 수 있지만 워낙 가는 곳마다 발군의 역량을 보여 왔던 터라 주변에서 기대감이 크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일부 출입기자들은 무엇보다 스킨십에 약한 원 대변인을 두고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감춰둔 발톱을 내세워 조만간 본인만의 강점을 드러낼 것이라는 기대감도 표시한다.

대부분 호불호가 갈리는데도 불구하고 남태헌 농림축산식품부 대변인은 아직까지 반감이 많은 편이다. 기대 만큼은 융통성이 부족하고 축산정책과장을 거쳐 '갑(甲)'으로서 권위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홍보기획팀장을 역임한 만큼 행정경험이 부족한 이동필 장관을 도와 소통창구로서 메신저 역할을 해낼 것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아직까지 존재감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우윳값 파동'등 부처 주요 현안을 두고 일부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는 "대변인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아직까지 대변인 얼굴을 못봤다는 기자도 있다"라는 성토가 이어졌다.

이에 남 대변인은 향후 언론과의 스킨십에 적극 나선다는 각오를 내비췄다. 그는 "대변인실의 업무파악과 장관 수행 등으로 제대로 못챙긴 구석이 있다"며 "소통창구로서 중재자 역할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범 공정거래위원회 대변인은 전반적인 업무에 밝아 다양한 정책을 놓고 향후 국민·언론과의 메신저 역할에서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다만 대변인의 자리가 유연한 사고와 발빠른 순발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머릿속의 분석보다는 더욱 적극적으로 현장에 파고 들어야 한다는 쓴소리도 제기된다.

박광열 해양수산부 대변인은 초반 선굵은 행보로 윤진숙 장관 못지 않은 화제가 됐다. '할말은 한다'는 걸쭉한 입담과 존칭을 생략하기도 하는 파격 말씨로 초기에는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우려 섞인 비판도 받았다. '안티카페'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판에 박힌 공보 업무에서 벗어나 진정성 있는 소통으로 자리잡으면서 지금은 오히려 점수를 따고 있다는 후문이다.

여성대변인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는 박성희 고용노동부 대변인은 내부 직원들과의 소통에 강해 '절반의 성공'은 거뒀다는 평가다.

다만 외부와의 스킨십이 약하고 친화력이 부족해 '마당발'로 유명했던 김경선 전 대변인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부처 고위 관계자는 "관가에서 승진의 관문으로 통하는 만큼 대변인의 자리는 살얼음판을 걷는 힘든 자리"라면서 "대변인들의 역량을 논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전임 대변인들의 강점은 계승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