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 20년> 전문가들 “선의의 차명거래 보완장치 필요”
2013-08-11 08:00
아주경제 박선미 기자= CJ그룹 이재현 회장 및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를 통한 횡령, 재산 은닉 등 비리가 잇달아 터지면서 금융실명제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를 국정과제로 내놓고 있는 만큼 금융실명제는 보완 및 개선해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국회의원들은 차명 금융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을 여러 개 발의한 상태다. 이들 법안은 실명 거래 위반시 금융사뿐만 아니라 거래 당사자도 처벌하고 처벌 강도도 높이는 한편,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차명 거래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문가들은 입법에 난항을 예상했다. 정부와 금융계 일각에선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다 선의의 차명거래와 범죄형 차명거래를 솎아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전문가들은 차명계좌를 이용한 범죄가 끊이지 않고있어 이를 근절해야 하되, 국민의 합의를 거쳐 단계적으로 차명 거래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창현 금융연구원장은 “차명계좌 원천 금지라는 너무 큰 발자국을 떼게 되면 혼란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금융거래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예외조항을 두는 등 일종의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범죄형 차명거래에 대한 근절의 필요성에는 이의를 달 수 없다”며 “다만 선의의 차명거래에 대해서는 예외조항을 두고 차츰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형사처벌 등 지나치게 강력한 금지조항을 두면 되려 제도의 합리성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존의 선의의 차명거래라도 앞으로는 실명을 쓰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었다. 윤석헌 숭실대 교수는 “선의의 차명거래자들이 계좌에 실명을 쓸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그 방법 중 하나가 임의단체 명의로 계좌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종친회 계좌의 경우 간사 등 책임자의 명의로 통장을 만들게 아니라 OOOO씨 종친회 등 임의단체 명의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임의단체란 각종 친목회, 동창회, 종교단체, 종중, 사회봉사단체 등 각종 모임을 말한다. 임의단체 명의로 통장을 만들려면 구비서류는 모임규약을 제출하면 된다. 이는 금융실명거래법에 명시돼 있는 사항이다.
이어 윤 교수는 “국민들이 의식 면에서도 금융거래 성숙도가 높아질 수 있도록 계도 및 홍보도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범죄형 차명 거래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실명에 대한 세밀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금융실명제는 운용의 묘가 필요한 제도”라며 “모든 계좌를 실명으로 하기에 부작용이 크다고 판단된다면 차명을 어느 선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