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현정은에 구두 친서‥남북관계 전환 신호탄될까?

2013-08-04 18:29

아주경제 강정숙 기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지난 3일 금강산에서 열린 정몽헌 전 회장 10주기 추모행사에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구두 친서를 전달받음에 따라 향후 남북관계와 대북사업의 향방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현대그룹에 따르면 추모행사의 북측 대표로 나온 원동연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은 행사장인 금강산특구 온정각에서 현 회장 일행을 맞았다. 이 자리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의 구두 친서가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 구두 친서… 금강산 관광 재개 가능성

현대그룹측이 공개한 친서의 내용은 "명복을 기원하며 아울러 현정은 회장을 비롯한 정몽헌 선생 가족과 현대그룹의 모든 일이 잘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룹 내부에서는 현 회장이 마지막으로 참석한 2009년 이후부터 북측에서 줄곧 실무진급을 보냈고, 현재 남북관계도 경색될 대로 경색된 터라 북측 고위인사가 참석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지 않았다.

이 때문에 원 부위원장이 직접 행사에 참석해 최고지도자의 구두 친서를 전달한 것은 뜻밖의 상황으로 받아들여졌다.

4년 전인 2009년에는 행사 전 북측에서 이종혁 당시 아태위 부위원장이 추모행사에 참석할 것이라는 통보를 줘 그에 맞춰 준비를 했지만 이번에는 그런 언질이 일절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친서 내용이 표면적으로는 추모의 성격이지만 사실상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내포한 것으로 보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 회장은 금강산에서 돌아온 뒤 "금강산 관광을 결코 놓치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관광이 재개될 수 있도록 모든 힘을 다해 노력하겠다"면서 금강산 관광사업에 대해 과거보다 한층 강렬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남북관계가 극도로 악화한 상황이라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어쨌든 김정은 위원장의 구두 친서가 남북관계는 물론 대북사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이날 현 회장의 금강산 방문을 수행한 그룹의 다른 관계자는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지 5년이 흘렀음에도 호텔 등 시설물들이 비교적 깨끗하게 잘 보존돼 있었다"며 "김 위원장의 친서가 금강산 관광 재개의 신호탄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구두 친서… 정부 정치적 해석 경계

정부는 '구두 친서'에 대해 공식 논평을 자제하면서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정부 관계자는 "메시지 상으로는 현대아산과 개인(정몽헌 전 회장)에 대한 코멘트이지 (남북관계 등) 현 시국에 대한 코멘트는 아니지 않느냐"며 "정부가 공식적으로 코멘트할 것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 같은 반응을 두고 구두 친서에 지나치게 정치적 메시지를 부여해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현 회장에게 전한 김정은 구두 친서는 김정은 체제 출범 후 남측 인사에게 전한 첫 친서인 만큼 북측이 상당한 성의를 보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금강산 관광사업이 조속히 재개되길 북측이 희망한다는 메시지도 간접적으로 피력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현 회장에게 전달된 김 제1위원장의 친서는 현안에 대한 언급은 배제한 채 "정몽헌 전 회장의 명복을 빌며 아울러 현정은 회장을 비롯한 정몽헌 선생의 가족과 현대그룹의 모든 일이 잘되길 바란다"는 내용이었지만 남북관계에 대한 함축적 의미를 담았다는 것이다.

또 김 위원장이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빈소에서 남측 인사의 조문을 받기는 했지만, 남쪽에 직접 친서를 전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최측근인 동시에 대남 실세인 원동연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을 직접 금강산에 보낸 것은 격식을 갖춰 김 제1위원장의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적격인 셈이었다는 평가다.

김 제1위원장이 이번 구두 친서 전달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 시절 맺어진 현대그룹과의 관계를 지속해가면서 금강산 관광사업 등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이 (구두 친서를 통해) 금강산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안 했지만, 민족협력 사업이라는 의미를 되새김으로써 금강산 관광을 빨리 재개했으면 좋겠다는 간접적인 메시지도 담은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현 회장은 "사업과 관련한 북측의 언급이 없었느냐"는 질문에는 "추모사를 전달하기 위해 온 것이어서 사업 이야기는 없었다"며 "개성공단 문제,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해서도 북측의 언급은 없었다"고 밝혔다.

◆통일부 개성공단 관련… 인내심 한계
김 위원장의 구두 친서가 알려지면서 성급하게 남북관계에 희망의 불씨가 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기대도 나오고 있지만, 정부는 냉정을 선택 했다

통일부는 4일 개성공단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마지막 실무회담 제의와 관련해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며 북한에 책임있는 행동과 회담 수용을 강하게 촉구했다.

특히 정부는 북한의 일방적인 개성공단 중단으로 인한 기업 손실에 대해 북한의 피해보상 등 책임있는 조치도 요구했다.

김형석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통해 "북측이 진심으로 기업과 근로자들의 고통을 해소하길 원한다면, 진정 개성공단이 남북관계의 시금석이라고 여긴다면, 침묵이 아니라 책임있는 말과 행동으로 그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며 북한에 실무회담 수용을 촉구했다.

김 대변인은 "북측이 또다시 정치·군사적 이유로 공단 운영을 중단시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지속된다면 공단이 재가동된다고 한들 제대로 된 기업활동을 할 수 없으며, 결국 기업들은 개성공단을 떠날 것"이라며 북한에 개성공단 중단사태 재발방지를 강조했다.

이날 성명 발표를 두고 일각에서는 개성공단 폐쇄를 염두에 둔 정부의 중대조치 결단이 멀지 않았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