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미 동성결혼 합헌 판결을 보며

2013-06-30 13:47

아주경제 송지영 워싱턴 특파원=벌써 20년 전 대학교 언저리를 맴돌고 있었을 때 한 선배와 동성연애를 놓고 난상토론을 한 기억이 난다. 당시 주제는 분명히 동성애자, 동성연애였지 ‘동성결혼’은 아니었다. 동성애 자체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도 정립이 안 된 상황에서 이들의 결혼까지 주제가 앞서가지는 않았다. 당시는 그리고 동성결혼이라는 말 자체를 들어본 적도 없을 정도로 성적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논의가 부족했었다.

지난주 미국 대법원이 지난 1996년 제정된 결혼보호법의 결혼 규정, 즉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라는 정의가 동성애자들을 차별하고 이들의 권익을 무시한다고 보고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 송사의 빌미가 됐던 캘리포니아에서의 동성결혼 금지 조례도 무너지고 바로 동성애자들의 결혼신청이 수백 건에 달했다. 이로써 동성애자들은 결혼을 통해 연방이나 주법으로 주어지는 무려 1000가지의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젊고 혈기 왕성했던 시절 나름 진보적이었다고 스스로 평가했지만, 동성애만큼은 쉽게 넘어가 지지 않았다. 동성애 하면 떠오르는 동성간의 성애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아무리 이성적으로 이들을 받아들이려 해도 잘 되지 않았다. 나이를 먹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 이같은 이슈는 뒤로 묻어두었다. 주변에서 어느 누구도 이 주제로 나를 다시 고민하게 하지도 않았다. 미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동성애자들을 접하면서 가끔 이 문제를 다시 꺼내 더듬어 보기 시작했다. 이미 일부 주에서는 이들의 결혼을 인정하고 다른 이성 부부처럼 세제혜택이나 배우자 혜택 등 모든 것을 동등하게 제공하고 있었다.

그리고 미국의 진보 정치의 일익을 맡고 있는 민주당 인사들을 간헐적으로 접하면서 생각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과연 민주주의가 무엇이고, 무엇이 진보이며 보수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면서 동성애과 동성결혼을 내 마음 속에서 정의하고 가볍게 떠나보낼 수 있었다.
결혼이든 무엇이든 사회적, 법적 장치의 혜택은 이성이든 동성이든 누구도 그 제도의 혜택을 누려야 한다는 게 민주주의의 가치를 중시하는 이들의 생각이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생각이 아니었다. 내가 받아들이고 못 받아들이고 문제가 아니라, 같은 하늘 아래 사는 나와 내 이웃이 동등한 법적, 사회적 대접을 받느냐가 이슈였던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 법률은 종교와 정치를 엄격히 분리하고, 인종, 성별 등 비 능력적 요인으로 차별하는 것을 금지한다. 게다가 미국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주창한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치’를 실천하고자 한다. 따라서 정치인들도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이들의 권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자기가 가진 머릿속의 주관을 실현하는 역할은 아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시간에도 저쪽 테이블에서 두 남성이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옷차림이나 말투로 봐선 동성애자 가능성이 높다. 저들이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얼마나 행복할지 상상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동안은 동거자로 살면서 혼인신고도 하지 못하는 커플이었다. 그들의 행복이 나한테 피해를 준 일도 없다.

이렇게 해서 법이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구나 생각이 든다.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개인의 권익을 거의 무제한 인정하는 현대 사회의 민주주의의 장치, 이 모든 것들을 누구나 함께 누렸으면 한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잘났어도 남을 재단하고 받아들이니 못 받아들이니 할 권한은 없다고 결론내리니 마음도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