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의 아트톡>희수전 여는 김종학화백 "죽을때까지 대작 해보자 결심"

2013-06-17 20:11
30년전 설악산에 들어가 작업 '설악산 화가'로 유명 <br/>12일부터 갤러리현대서 개인전..전통농기구등 신·구작 60점 전시

가로 2m가 넘는 신작 '월하'앞에서 기자들과 만난 설악산 화가 김종학 화백.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지난 50년이 일장춘몽 같다."
올해 희수(77세)를 맞은 '설악산의 화가' 김종학 화백이 회한에 젖었다.

1962년 서울대 미대 회화과를 졸업한 이후 50년째 전업작가로 살아온 그는 "70이 넘고보니 60이 되어야 화가가 된다는 할아버지 말씀이 다 맞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20,30대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했고, 40이 넘어가면서 조금 알게 된 것 같고, 50대가 되서야 내 작업이 보였지요."

4살때 연필을 쥐자마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그의 별명은 '도깨비'. 혼자있길 좋아하고 열중하는데에 재주가 있다는 그는 자연의 신비로움에 취해 외딴곳에서 평생 미술과 살아왔다.

"작가는 빈방에서 정말 외로워 보고 혼자 몸부림치는게 중요합니다"
김 화백에게 '외로움'과 '골동품 수집'은 작업의 힘이다.

오는 12일부터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진정(眞情)-김종학 희수전’이 열린다.
미술시장 블루칩작가인 '김종학 다시보기'전으로 기획된 이 전시는 신관과 본관, 두가헌 갤러리 등 전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으로 펼친다.

지난 2011년 국내작가로서는 영예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 이후 3년만의 전시다.

깊은 숲속 엉켜있는 잡풀과 넝쿨, 호박꽃과 박꽃등 에 반해 30여년째 설악산에 파묻혀사는 김화백의 그림은 자연의 정기가 충만하다.

70대 나이가 무색하리만큼 힘있는 붓질과 화려한 색감이 싱싱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자연속에 살며 밤이고 낮이고 그리고 싶은대로 '제 멋대로'그린 그림은 엉켜있는 잡풀과 넝쿨은 화면을 뚫고 나올듯 꿈틀거린다.
'식물들의 전쟁'이라도 일어난듯, 수많은 덩쿨들이 제 색을 품어내며 서로 덮고 누르며 엉켰다가 풀리기를 반복하며 생존본능을 드러낸다.

5일 갤러리현대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희수전은 그냥 하는 말이고, 그냥 오래간만에 하는 개인전"이라면서“그동안 발표한 작품과 미발표작도 있는데, 지난 작업을 돌아보는 의미가 있다. 화가 인생에 좋은 기회가 온 것”이라며 느긋함을 보였다.

이번 전시에는 야생꽃나무가 꼬물거리는 폭이 2~5m 크기 대작과 그가 사랑하는 골동품들중 전통 농기구등 신·구작 60여점을 선보인다.
여름. 1980년대 종이에 아크릴 채색, 8폭 병풍, 194.5x313cm

이번에 새롭게 내놓은 2m가 넘는 신작 '월하'는 개나리,칡넝쿨 등 갖가지 식물들이 꼬물꼬물 뱀처럼 둥글고 흰 달에 몰려드는게 인상적이다.
"오후 5~6시에 본 달과 작업실 주변의 넝쿨 더미들을 그렸다"는 작가는 자연의 그 색깔, 그대로 담아내기 위해 튜브물감을 바로 짜내 화폭에 재빨리 쏟아낸다. 강렬한 색감과 야생적인 기운이 생동하는 '김종학표' 그림의 특징이다.

1980년대 야생화가 꿈틀대는 '꽃그림'을 들고나왔을때 추상화하는 친구들로부터 '타락했다'는 소리도 들었다.

하지만 설악산에 들어가서야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자연을 그리는 것이야말로 화가의 숙명”이라고 여겼던 그에게 '색과 형태'는 중요한 화두였다. "그림에 들풀이나 야생화가 많은 이유는 조형미가 빼어나게 아름다웠던 탓"이라고 설명했다. 설악산을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았다. 바라보고 관찰하고 기억한 다음 마음속으로 취사선택하고 기억의 저장고에서 재구성했다. 평생 마음에 새겨둔 '기운생동' 을 자연에서 발견했기때문이었다. 그래서 서양재료로 그린 동양화, '김종학표 구상화'는 '추상적인 사실화'로도 불린다.
김종학화백이 수집해온 전통농기구도 희수전에 선보인다.

일평생 '조형성', '조형미'에 빠진 '김종학은 바보'소리도 들었다. 그는 목가구나 목기, 보자기 등 우리의 전통미가 묻어나는 골동품을 모으는 수집가로도 유명하다. '나까마'(중간상)가 부르는대로, 값을 깎지도 않고 사는통에 주변에서 '속아선 산다. 바보'라고 했지만 "만질수 있는 행복감이 커 부르는대로 줬다.
30대 초반부터 농기구를 수집했다는 그는 값이 싸기도 했지만 마치 조각 작품 같았고 그래서 용도보다는 조형물이라고 생각하고 사들였다. 아름다움을 혼자 즐기는 것이 과분하다며 목기를 중심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300여점을 기증하기도 했지만 그의 집은'골동품 천국'. 수집한 목가구 농기구 민예품등은 이제 저장할곳이 없어 창고비 걱정할 정도가 됐다.
"마누라 몰래 돈 만들어서 사기도 했는데 몇년전부터 골동품(수집)을 끊었어요. 그랬더니 봉이 사라졌다고 하더라고요.하하~."

이번 전시에 나온 농기구는 그야말로 조각품으로 환골탈태했다. 루마니아 추상조각가 브랑쿠시 작품이 부럽지 않을 정도다단위에 올려진 농기구들은 본래 기능을 떠나 하나하나가 놀라울 만큼 아름다운 비례감과 자연스런 매력을 발산한다.

'조형미와 기운생동'에 천착하며 희수가 된 그는 "아직 조각을 못해봤는데, 조각 작업으로 인물도 물고기도 표현하고 싶다"며 새로운 도전을 말했다.

“피카소나 마티스 같은 외국 작가들을 보면 죽는 날까지 계속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했지요. 나도 여기에서 주저앉지 않고 죽을 때까지 대작 중심으로 한번 작업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전시는 7월 7일까지. (02)2287-3500.
30년째 설악산에 묻혀 설악풍경을 화폭에 담아내는 김종학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