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부동산대책> 다주택자의 '비애'… "팔지는 말고 사기만 하라고?"

2013-04-19 11:05
다주택자에 대한 출구 방안 없어 정책 '엇박자'<br/>"양도세 중과 폐지 추진하면서 아예 못 팔게 한 것은 문제"

아주경제 정수영 기자= "다주택자가 보유한 주택에 대한 양도세 중과제도를 폐지하면 뭐합니까. 팔 수가 없는데…."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살고 있는 회사원 이경재(38)씨. 그는 집이 두 채인 다주택자다. 하지만 두 채를 모두 팔아도 집값은 6억원이 채 안된다. 서울 강남의 웬만한 소형 아파트 한 채도 살 수 없는 액수다. 여기에 매달 상환해야 하는 주택담보대출 원리금만 70만원으로, 말 그대로 하우스푸어 신세다.

이씨가 다주택자가 된 것은 부동산시장 호황기 끝 무렵인 2008년 중순. 처음엔 집을 팔기 전 새 집으로 이사해 생긴 '일시적 2주택자'였다. 하지만 얼마 안돼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집은 팔리지 않았고, 그는 의도하지 않게 다주택자가 됐다.

일시적 2주택자로 인정되는 기간은 총 3년. 다주택자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려면 이씨는 2년 전인 2011년 중순까지 집을 팔아야 했다. 하지만 시세 이하로 집을 내놔도 살려는 사람은 없었다.

이씨는 새 정부가 하우스푸어를 구제해준다고 해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정부는 지난 1일 발표한 부동산 대책에서 올해 말까지 기존 주택을 매입할 경우 5년간 양도소득세를 면제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이씨와 같은 다주택자들은 크게 실망했다. 대상 주택이 1가구1주택자(일시적 2주택자 포함)가 보유한 집으로 제한됐기 때문이다. 하우스푸어도 구제를 받으려면 1주택만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이씨는 "다주택자를 시장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묶어둔 채 수요를 늘리겠다는 고육지책"이라며 "정부의 정책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반발했다.

1가구 2주택자를 포함한 다주택자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 엇박자를 내면서 불만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정부가 주택 거래량을 늘리기 위한 방편으로 다주택자 양성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이들이 시장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출구는 오히려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4·1 부동산 대책'에는 정부가 다주택자들을 시장에 유입시키기 위한 방안들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특히 올해 안에 추가로 주택을 매입하면 이 집은 5년간 양도세 면제뿐 아니라 주택 수에서도 제외된다.

정부의 다주택자 양산 정책은 몇년 전부터 시작됐다. 2000년대 중·후반 '수요 억제·공급 확대' 위주였던 주택 정책은 2010년을 전후해 '수요 확대·공급 축소'로 바뀌었다.

정부는 이 일환으로 경제적 여유 계층을 주택시장에 끌여들여 임대시장 안정화를 꿰하기 위해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세율 50~60% 적용) 제도 폐지를 추진해 왔다.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자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1년간 폐지'라는 한시법안을 마련, 매년 1년씩 연장하며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양도세와 상관없이 현재 부동산시장은 다주택자들에게 매우 불리한 상황이다.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양도 차익이 거의 없는데다 선뜻 팔리지도 않는다. 정부의 이번 조치로 올해 매도는 더 힘들어졌다.

여야 정치권도 양도세 면제 대상 주택을 9억원 이하 또는 면적기준 제한 폐지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1주택자가 소유한 집으로 제한하고 있다. 자칫 투기세력까지 지원해 준다는 비난을 살 수 있어서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현재는 집값이 많이 떨어져 양도세 중과 폐지가 실질적으로 다주택자에게는 큰 도움이 안된다"며 "양도세 면제 혜택 대상을 1가구 다주택자 소유 주택으로까지 확대해야 그나마 숨통을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