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돈의 팔촌까지'…재형저축 실적 압박에 불완전판매 여전해
2013-03-18 14:31
은행원들 "인맥 없으면 실적 늘리기도 어려워…죽을 맛"
아주경제 이수경 기자= 금융감독원의 재산형성저축(재형저축) 과당경쟁 자제 방침에도 불구하고 불완전 판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영업실적 압박 때문이다. 은행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괴로움을 토로하고 있다.
17일 은행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 11일 재형저축의 실적 할당 및 평가, 과도한 경품제공 등을 모두 금지하라고 경고했다. 여기에는 직원들의 성과를 측정하는 핵심성과지표(KPI)에서 재형저축 실적 반영을 금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하지만 여전히 과당경쟁과 불완전판매는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마땅히 마케팅에 주력할만한 상품이 없는 상황에서, 은행권이 그나마 기댈 수 있는 것은 4%대 고금리의 재형저축밖에 없기 때문이다.
A은행의 한 영업점 직원은 "올 상반기 목표만 2000만좌로 직원당 가입통장이 200개는 돼야 한다"며 "사돈의 팔촌까지 연락해서 일단 임의로 계좌를 만드는 데 막상 서류를 떼보면 조건이 안 맞아 취소해야 하는 문제도 종종 발생한다"고 말했다.
은행원들이 자신의 돈을 넣어 우선 가입부터 시키고 보는 이른바 '자폭 통장'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가입 최소금액인 1만원을 넘기기 위해 은행원들이 자신의 돈을 보태 가입금액을 올리는 행태도 벌어지고 있다.
B은행 직원은 "모든 친척들에게 연락해 카드까지 만들었다"며 "어차피 홍보를 해야 하고 실적도 올려야 하는데 어떻게 정도영업을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소비자들의 이른바 '꺾기' 피해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꺾기는 개인 및 기업 대출 시 은행에 일정한 금액을 강제로 예금하도록 하는 구속성예금을 뜻한다.
회사원 김모씨(35)는 "회사가 직원들에게 재형저축 가입을 반 강제적으로 권한다"며 "거래은행의 실적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 박모씨(34) 역시 "최근 중도금 대출을 받으러 갔다 오히려 재형저축 가입 권유만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오전 8시 현재 재형저축 가입 계좌는 총 91만7000좌에 달한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가입 계좌는 꾸준히 늘고 있으나 증가율은 미미하게 둔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출시돼 첫날에만 29만2000개의 계좌가 가입됐지만 둘째 날은 절반인 16만4000좌, 다음날은 15만좌로 증가속도가 점차 느려지고 있는 것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이미 금융당국에서 재형저축의 업그레이드 판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 등으로 재형저축을 찾는 고객 발길이 점차 끊기고 있다"며 "현재 집계된 가입계좌 수에는 허수가 상당히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