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아주중국> 세월의 발자취를 지나는 ‘生’의 소나타

2013-02-04 18:14
서양화가 박기수



산(山)의 고유한 냄새, 느낌, 대화, 교감으로 승화시켜 창조되는 박기수 화백의 ‘산’연작은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감동드라마로 밀려온다. 절제와 강렬한 리듬의 선율은 관람자의 내면으로 들어와 켜켜이 쌓아놓은 세월의 이야기들로 다가온다. 그곳에 있는 눈물, 풋풋한 첫사랑의 밀어,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민초들의 속 깊은 삶의 침묵들이 캔버스의 능선으로 살아 꿈틀거린다.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산의 실존성을 품은 풍경의 근원지는 현장성에 있다. 그는 산을 찾고 난 후에야 반드시 붓을 든다. 현장의 살아있는 생명의 선과 색채와 리듬과 어울림은 두터운 마티에르의 깊이감과 어우러져 그만의 웅혼한 맥(脈)으로 우러난다. 절제와 열망처럼 강렬한 표현의 질감은 그의 조형세계를 함축하고 있다.

작품 ‘겨울 백두산’ 설경 천지(天池)는 손을 담그면 금방이라도 차가운 냉기가 손끝을 타고전신으로 번질 듯 짙푸르다. 또 거뭇거뭇한 산의 굵은 힘줄위로 소복소복하게 쌓인 복스러운 하얀 눈(雪)은 계곡과 산줄기에 내려앉아 정적의 신비로운 음률로 떠받치듯 다정하게 느껴온다.

작품의 백미(白眉)인 산의 윤곽선은 두텁게 물감을 바르는 끈질긴 반복을 통한 자신과 싸움의 산물이다. 그렇게 간신히 허락한 산은 원초(原初)의 생명, 고독한 인간 삶의 행로에 겸손과 위로의 힘찬 울림으로 다가온다. 화백은 “색조의 명랑함은 색조를 밝은 색으로 함으로 얻어지고 선의 명랑함은 방향의 상승성에 의해서 얻어진다.

고요함은 색조에 있어서의 따뜻한 색과 차가운 색을 사용함으로써 얻어지고 선의 슬픔은 하강선에 의해서 얻어진다. 이러한 표현수단은 색조와 색채의 반응에 의하여 진리나 실재를 인식하는 관상(觀想)적 융화를 통하여 얻어지는데 그것은 매우 확고한 법칙”이라고 철학적 인식의 작업자세를 전했다.

박기수 화백의 산(山)의 연작 중 ‘독도’( 53.0×45.5㎝, 2011)

경남 사천이 고향인 화백은 화업(畵業) 35년 동안 산(山)을 그려왔다. 그는 “설악, 계룡, 치악산 등지의 폐가(廢家)에서 음식을 끓여먹으며 10여년을 산과 호흡하고 대화하고 끌어안으며 현장에서 그린 것이 나의 40대 삶이었다”고 치열한 작가정신을 담담히 회고했다. 산의 골격과 형상이 부각된 지극히 간결한 화면이다. 그럼에도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뚫고 백두대간(白頭大幹)을 오르는 한민족의 강인한 맥박처럼, 존재의 고귀함을 일깨우는 생명의 뿌연 입김들이 설산(雪山)에 흩날리듯 감동으로 관람자의 시선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은 실로 놀랍다.

한편 생명력으로 응축된 그의 작품들은 지난해 10월 홍콩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아시아 컨템퍼러리 아트 쇼’에서 해외 컬렉터들의 뜨거운 주목을 받으며 인기리에 판매되었고 연이어 국내서 11월에 열린 한벽원갤러리(월전미술관) 개인전에서 국내 애호가들의 폭발적 관심과 뜨거운 호응을 얻음으로써 블루칩 작가로서의 입지를 재확인시켰다.

경희대 교육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박기수 작가는 지난 1992년 서울 하나로 화랑을 시작으로 개인전을 25회 열었다. ‘이형회’ 대상 수상작가로 그동안 홍콩,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캐나다, 러시아, 몽골, 중국, 독일, 프랑스, 뉴욕 등 각종 국제아트페어에 참여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