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는 투자자와 소송 중"...연루금액만 1조1천억원대

2013-01-16 06:54
34개 증권사 법정싸움 중..우리투자증권 44건으로 최고

아주경제 유희석 기자= #1. 젊은 시절 은행에서 일하다 퇴직한 후 사업체를 운영하던 정모씨. 나이가 90세에 이르자 모아놓은 자금을 굴릴 생각으로 A증권 건대역지점을 찾았다. 직원들은 정씨에게 고수익 투자를 권유했다.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았지만, 투자위험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다. 장밋빛 투자 권유에 솔깃해진 정씨는 덜컥 수억원을 맡겼다. 오래지 않아 정씨는 큰 손해를 봤다. 무모한 투자는 실패로 끝났다. 정씨는 충격을 받았고, 자신을 담당했던 A증권 직원에게 3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투자위험에 대해 충분히 알았다면 돈을 맡기지 않았을 터였다. 법원은 1심에서 A증권이 정씨에게 1억8000만원을 물어주라고 판결했고, A증권은 항소했다.

#2. B증권은 주가연계증권(ELS)을 산 고객들이 중간상환을 받지 못하도록 기초자산 주식을 집중적으로 매도하는 방법으로 주가를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기초자산 평가가격이 중간평가일에 기준가격보다 같거나 높아야만 중도상환이 가능한 점을 이용해 고객들의 중도상환을 막았다는 것. 이에 대해 피해를 주장하는 고객들과 B증권은 치열한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증권사들이 법정 싸움에 잇따라 휘말리고 있다. 경기불황으로 증시가 침체되면서, 투자 손해를 배상하라는 요구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소송규모가 수백억원에 이르는 것도 많아, 증권사들은 사활을 건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15일 금융감독원이 국내에서 영업 중인 61개 증권사의 소송 현황을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고객이나 기업 등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인 증권사는 34곳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의 전체 소송 건수는 370건, 금액으로는 1조936억원에 달했다.

업체별로는 우리투자증권이 44건으로 가장 많은 소송에 휘말렸다. 이 가운데 LIG건설 기업어음(CP) 관련 소송이 주를 이뤘다. 우리투자증권은 지난 2011년 3월 LIG건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전에 발행한 CP를 팔았다가, 고객들이 큰 손해를 입었다.

이에 고객들이 대거 손해배상 청구에 나섰다. 2011년 3월부터 최근까지 우리투자증권이 LIG건설 CP 판매와 관련해 진행 중인 3억원 이상 소송 건수만 15건(320억원 규모)에 달한다.

현대증권도 607억원대의 소송에 휘말리고 있다. 가장 큰 사건은 지난 1997년 SK하이닉스(구 현대전자산업)의 국민투자신탁증권(현 한화투자증권) 매각 관련 현대중공업과의 분쟁이다. 현대중공업은 현대증권과 하이닉스를 상대로 주식 매매와 관련한 법인세 등 부대비용을 돌려달라며 402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SK증권은 선박펀드 투자 실패로 삼성생명·KB생명 등 6개 금융회사에 소송을 당했다. SK증권이 조성한 사모펀드의 근거가 된 계약서가 가짜로 밝혀지면서 수백억원의 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증권사 간 소송전도 치열하다. 독일계 도이치증권은 하나대투증권·키움증권·교보증권과 수백억원대 소송전을 진행 중이다. 도이치증권은 옵션 만기일이었던 2010년 11월 11일 자사 창구에서 장 마감 동시호가 때 대규모 주문을 기습적으로 실시해 증시를 폭락시켰고, 파생상품 등에 투자했던 증권사들이 큰 손해를 입었다.

이밖에 동양·교보·메리츠종금·대우증권 등이 각각 20건 이상의 소송을 진행 중이다. 한국투자증권과 한화투자증권도 각각 15건, 12건의 소송을 당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증권사를 상대로 한 소송은 대부분 상품의 불완전판매나 불성실 고지 등이 이유"라며 "투자 손실로 인한 개인 혹은 다른 기업과의 마찰이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