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구하기' 8조 돈보따리 풀렸다… 업계, "다행이긴 한데…"
2012-08-13 17:28
아주경제 이재호·이명철 기자= 금융당국이 경영난에 시달리는 건설사들을 위해 8조원 규모의 돈보따리를 풀었다.
전매 특허인 은행권 팔 비틀기도 잊지 않았다. 건설사 워크아웃이 중단될 경우 채권은행에 책임을 묻겠다는 으름장을 놓은 데 이어 금융지주회사 회장들까지 소집해 전폭적인 지원을 촉구할 계획이다.
그러나 건설업계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대규모 유동성 공급을 통해 급한 불은 끌 수 있겠지만 다소 늦은 감이 있다는 평가다.
국토해양부 등 관계 부처와 협의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대책을 발표하면서 정책 실효성을 반감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 건설사 “죽겠다” 호소에 자금지원 확대
현재 시공능력평가액 순위 100위권 건설사 중 워크아웃 및 법정관리를 신청한 업체는 25개사에 달한다. 올해 신용위험 평가 결과 구조조정 대상인 C등급을 받은 업체 36곳 중 17곳이 건설사였다.
건설업계의 전반적인 경영여건은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보다도 악화됐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건설업 매출액순이익률은 지난 2007년 6.4%에서 2008년 3.1%, 2009년 1.7%로 하락하다가 2010년 2.2%를 기록한 뒤 지난해 1.4%로 다시 하락 반전했다.
건설업경기실사지수(CBSI)도 지난해 말 71.6에서 올해 7월에는 65.7 수준까지 곤두박질했다.
건설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3% 수준이고, 건설투자가 총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3.5%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더이상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이에 따라 금융위원회는 우선 유동성 공급을 확충키로 하고 13일 ‘건설업 금융지원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 발행 규모를 3조원으로 확대하고 배드뱅크를 활용해 프로젝트파이낸싱(PB) 부실채권 4조원을 추가 매입키로 했다.
또 브릿지론 보증을 2년 만에 부활시키고 패스트트랙 프로그램도 내년 말까지로 연장하는 방안 등을 통해 1조원을 추가 공급키로 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유동성 공급액만 8조원 규모다.
◆ 건설사 부도나면 채권은행 책임 묻는다
은행권에 대해서도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이날 간부회의에서 “건설사가 어려워지면 채권단이 자금 지원 문제를 고민하기보다 다른 은행에 책임을 미루는 전근대적인 행태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해당 건설사가 살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면 결국 채권은행도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신규 자금 지원을 둘러싼 주채권은행과 PF 대주단 간의 갈등을 막기 위해 PF 사업이 끝날 때까지 소요되는 자금은 대주단이 제공하고 기타 사유에 따른 자금 소요는 주채권은행이 부담하는 식으로 교통정리를 했다. 자금 소요 원인이 불분명할 때는 반반씩 지원하고 사후에 정산토록 했다.
또 건설사 워크아웃이 중단되면 채권은행의 책임을 따져 제재 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워크아웃을 적극 지원하라는 우회적인 압박인 셈이다.
C등급은 물론 정상 건설사인 B등급에 대해서도 자금 지원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이를 위해 오는 21일 금융지주회사 회장단과 간담회를 개최해 지원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그동안 은행권 횡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이 컸던 건설업계 입장에서는 쾌재를 부를 만한 내용들이다.
◆ 업계 “늦었지만 다행” 후속대책 마련 촉구
건설업계는 다수의 건설사들이 유동성 위기로 쓰러진 상황에서 대책이 발표돼 늦은 감이 있지만 금융당국의 유동성 지원 의지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 소장은 “금융권이 책임을 회피하면 건설업이 연쇄부도를 일으킬 정도로 심각한 상황까지 도달했다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며 “은행의 책임을 분명하게 해줬다는 점에서 다소 늦긴 했지만 시의적절한 조치”라고 분석했다.
신규 자금 지원과 워크아웃 진행 등의 과정에서도 은행들의 고압적인 행태가 다소 누그러질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워크아웃 건설사에 대한 유동성 지원을 놓고 주채권은행과 PF 대주단이 이견을 보일 경우 대표 동수 위원회를 구성해 재적 3분의 2 이상 출석, 출석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의결토록 한 데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다만 브릿지론 보증 대상을 공공기관 공사대금 채권으로 한정한 데 대해서는 불만을 드러냈다.
김동수 한국주택협회 정책·기획실장은 “브릿지론의 경우 PF가 끊긴 상황에서 공공기관 공사에만 도입한 것은 실효성이 크지 않을 수 있다”며 민간사업에 대한 브릿지론 도입을 제안했다.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국토해양부 등이 참여한 후속대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건설경제연구실장은 “기존 정책을 엮은 수준에 그쳤지만 업계의 불안심리를 잠재우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정책이 제대로 작동되는지 관계 부처에서 꾸준히 모니터링을 실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