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기고> 모세의 기적

2012-07-12 09:27

군포소방서 119구조대 이민욱 소방교

<기고> 모세의 기적
(사진=군포소방서 이민욱 소방교)
2012년 6월 무렵은 이상하게도 구급출동 현장에서 마주한 환자들의 상태가 경미했으며, 경상자와 만성질환자 이송이 대부분이라 약간 긴장이 풀린 상태로 있을 무렵이었다.

어느 날 점심을 먹던 도중 출동벨이 울려 무전을 받아보니 상황실에서 팔 골절 부상 환자가 있다고 했다. 골절 부상은 생명에 크게 지장이 없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구급차에 탑승해서 현장에 도착해보니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한참을 헤치고 나간 후에야 환자 앞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나는 환자의 상태를 보고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오른쪽 팔목이 뼈가 드러나 보이며 일부분이 절단돼 있었다. 목격자에게 물어보니 골판지 찍는 기계에 손이 빨려 들어갔다고 했고, 그의 상처는 손목부분이 절단되어 뼈가 훤히 보이는 상태로 감염에 노출돼 있어 병원 이송이 긴급했다. 일단 생리식염수를 거즈에 묻혀 상처부위를 닦은 다음 붕대와 부목으로 고정해 환자를 구급차에 태웠다.

응급처치를 했지만,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절단환자는 수지접합전문 병원으로 이송해야하지만 관내에는 전문 병원이 없기 때문에 서울까지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사고 발생시간이 직장인들이 퇴근하는 시간이라 차량 정체가 예상되는 상황으로 나는 결단을 내려야했다. 일단 전문성이 떨어지더라도 가까운 병원으로 가서 응급처치를 받게 할 것인가? 아니면 시간이 걸려도 서울까지 갈 것인가? 후자의 경우에는 차량 정체가 심하면 환자에게 치명적일 수 있었다. 대신 전문적인 치료가 가능해 장기적으로 환자에게 유리했기 때문에 결국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기로 했다.

구급차의 사이렌을 울리며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퇴근시간 교통길은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환자의 신음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어 마음은 급해지는데 도로위의 차들은 비켜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갓길을 이용해 고속도로는 지났지만 국도로 들어서자 상황이 심각했다. 불법 주차된 차량 때문에 도저히 길이 나지 않는 상황에서 구급차가 지나가는데 비켜주지 않는 몰지각한 운전자들은 평상시에도 있었지만 그날따라 더욱 많은 것 같았다. 결국 마이크를 통해 구급차 밖으로 외쳤다. “여러분. 위급한 환자가 타고 있으니 길 좀 터주십시오!”

애타는 마음으로 외치고는 있지만,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사이렌을 켜도 비켜주지 않는데 마이크로 아무리 외쳐봤자 달라지겠는가! 나의 오판으로 환자에게 영구적인 충격을 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이 들 무렵 기적이 일어났다. 앞에 있던 몇 대의 차가 머리를 옆쪽으로 돌리기 시작하더니 나머지 차량도 뒤따라 방향을 돌렸다.

성경에 나오는 모세의 기적처럼 차의 파도가 구급차를 중심으로 반으로 갈라지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었다.

마이크로 연신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막힌 도로를 지나 환자는 시의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었고 나는 안전센터로 돌아오면서 만약 그 운전자들이 내 갈 길만 가면 된다는 식으로 비켜주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위기의 순간을 되돌아보면서 모든 사람들이 역지사지의 자세로 구급차에 타고 있는 사람과 그의 가족들을 생각해주길 바랬다.
돌아오면서 내가 뭐라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구급반장님이 묻는다.
“반장님 뭐라고 하신거에요?”
“그냥...아직 세상 사람들이 배려를 잊지 않은 거 같아 행복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