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 칼럼> 통일비전과 통일의지의 통일
2012-06-18 15:15
손기웅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연구센터 소장
통일된 독일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많은 사람들이 통일 과정에서 경제적 고려를 무시한 정치적 결정이 통일 이후 경제·사회적으로 큰 어려움을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서독 1마르크가 동독 4마르크인 상황에서 동서독 간 화폐의 1 대 1 교환, 동쪽에 대한 대폭적인 경제지원, 동독주민의 생산성을 고려하지 않은 높은 임금 책정 등을 예로 들었다. 통일 이후 현실적으로 부딪힌 경제적 부담과 어려움 때문에 통일을 천천히 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이들에게 묻는다. “그런 정치적 결단이 없었더라면 과연 동독인들이 서독을 받아들여 조속하고 평화적인 통일이 가능했을까요?”, “자기의 재산이 4분의 1, 아니 17분의 1 이상으로 줄어든다면 과연 동독인들이 통일을 원했을까요?”, “서독정부의 정치적 의지와 결단이 없었더라면, 제2차 세계대전의 전승4국 미·영·불·소를 포함한 주변국들이 ‘그래, 통일을 천천히 해라, 지켜봐주며 도와주겠으니 너희들이 원하는 시점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해라’ 했을까요?”
엄청난 통일비용이 소요됐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60년대 ‘라인강의 기적’을 이어 이제는 ‘엘베강의 기적’을 바라보면서 유럽통합의 기관차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유럽연합 27개국 전체 GDP의 28%를 독일 한 나라가 차지하고 있다. 세계경제의 기둥이 되고 있다. 옛 동서독 주민 간의 갈등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지만 동쪽 출신, 그것도 여성이 7년째 연방수상을 하고 있고 현재 연방대통령도 동독 출신이다. 국기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과 주장도 동쪽 출신이 차지하곤 했다. 통일독일은 분단 시절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강력한 국가를 지난 22년 동안 건설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통일이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우리는 정치적으로 자주권을 누릴 수 없다. 남북간 경쟁구도 속에서 주변국들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고, 그들로부터 영향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군사적으로도 자주적일 수 없다. 언제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긴장 속에서 우리는 미국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도 절름발이 경제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남북간 군비경쟁에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야 하고, 외국의 국내투자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통일을 이끌어낼 수 있는 상황이 한반도에 도래한다면,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가능한 한 빨리 통일을 이끌어내는 것이 민족대계에 맞는 일이다. 주변정세가 언제 어떻게 바뀔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통일을 통해서만 이룩할 수 있는 한민족 통일국가 성장을 비전으로 가지고 통일과정을 조속하게 마무리짓고, 통일 이후에 닥칠 어떠한 어려움도 차분하게 장기적으로 극복해야 할 일상적인 국가적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광복을 맞은 후 겪었던, 6·25전쟁이 끝나고 겪었던 그 어려운 삶을 우리 선조들이 은근과 끈기로 후세를 위해 꿋꿋하게 감내하고 걸었듯이.
남북관계가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주민들의 삶은 여전히 힘들고 어렵다. 그들의 실질적인 삶의 질, 인권 개선에 국민 모두가 동감하면서도 다른 목소리가 나타나고 있다. 바로 이 시기가 왜 우리가 통일을 해야만 하고 통일이 우리민족에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지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통일에 대한 국민적 의지를 모을 때이다. 그리고 그 힘을 바탕으로 남북관계를 새롭게 준비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