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통화완화에 신흥국 환율방어… 글로벌 '환율전쟁'
2012-03-18 20:14
中 위안화 절하 동참땐 세계경제 혼란 우려
(아주경제 이규진 기자) 장기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세계 경제에 글로벌 환율 전쟁이라는 초대형 악재가 출현했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이 경기부양을 위해 유동성을 대거 공급한 탓에 달러화와 유로화 가치가 하락하자 브라질과 인도 등 신흥국들이 잇따라 금리를 낮추면서 맞불을 놓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G2로 부상한 중국까지 위안화 절하에 나설 경우 세계 경제가 혼란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환율 전쟁의 단초를 제공한 쪽은 선진국들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는 지난 13일 초저금리 기조를 오는 2014년까지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연준은 금리를 현행 0~0.25%로 동결한 데 이어 물가에 악영향을 주지 않는 수준의 추가 양적완화까지 고려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2차 장기대출(LTRO)을 통해 5295억 유로의 자금을 풀었다. LTRO는 3년 만기의 대출을 연 1%의 저금리로 공급하는 프로그램이다. 이에 앞서 ECB는 지난해 12월 1차 LTRO를 실시하면서 4890억 유로의 유동성을 공급한 바 있다.
일본중앙은행(BOJ)도 확장적 통화정책을 펼치고 있다. BOJ는 지난달 자산매입기금을 55조 엔에서 65조 엔으로 확대하고 기준금리를 0~0.2%로 동결했다.
이에 따라 이달 들어 엔화가치는 11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BOJ의 통화 완화 발표로 환율이 달러당 80엔대를 넘어서자 6개월 내 달러당 90엔, 연말에는 100엔까지 하락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선진국들이 시중에 자금을 대거 공급하고 있는 이유는 위축된 경기를 부양시키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는 고스란히 신흥국들의 부담으로 전가되고 있다.
달러화와 유로화 등이 평가절하될 경우 신흥국 화폐가치가 올라 수출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신흥국들도 금리를 인하하는 등 환율 방어에 나서고 있다.
브라질은 만기 5년 이하 외자의 경우 6%의 금융거래세(IOF)를 부과하기로 하는 등 헤알화 절상을 저지하기 위해 외국자금에 대한 조세부담을 강화했다.
3년 이하 외자에 대한 세금 부과가 핫머니 유입을 차단하는 데 실효성이 없다고 보고 기준을 5년 이하로 확대한 것이다.
이에 앞서 브라질중앙은행은 지난 7일 인플레이션 위험에도 불구하고 기준금리인 셀틱금리를 10.5%에서 9.75%로 0.75%포인트 낮췄다.
이에 따라 기준금리가 2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아 차익을 노린 외국계 투기자금의 유입 가능성은 여전하다.
브라질은 선진국들이 초저금리 정책을 펼치면서 신흥국으로 핫머니가 유입돼 헤알화 절상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도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은 "선진국들이 경제적 이점을 얻기 위해 통화 완화에 나선 탓에 달러화 유동성이 넘쳐나고 있다"며 "이에 대비한 환율 방어책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올 들어 브라질 헤알화 가치는 미국 달러화 대비 8% 급등했다.
금리 인하 움직임은 다른 신흥국들로 확산되고 있다. 인도중앙은행은 지난 10일 지급준비율을 0.75%포인트 낮췄다. 베트남도 현재 15%인 기준금리를 1%포인트가량 인하할 예정이다. 필리핀 중앙은행은 지난 1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다.
문제는 중국이다. 중국이 위안화 환율 방어를 위해 금리 인하 행보에 동참할 경우 세계 경제가 급격히 위축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통화증가율을 13.6%로 제한하는 등 긴축정책을 유지하고 있지만 경기가 급격히 악화될 경우 완화정책으로 선회할 수 있다.
특히 주요 교역국인 유럽과 일본이 통화 약세를 주도하고 있어 중국이 환율 방어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알버트 에드워드 소시에테제너랄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크게 하락할 경우 언제든지 위안화 가치를 낮추기 위한 국채 매입에 나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20개월 만에 최저치인 3.2%를 기록했으며 지난 1~2월 산업생산 증가율은 예상치인 12.3%를 하회하는 11.4%에 그쳤다.
또 1~2월 중국의 수입은 7.7% 증가한 반면 수출은 6.9% 하락해 2월에만 무려 315억 달러의 무역적자가 발생했다. 이는 22년 만에 최대치다. 인플레이션 압력은 감소했지만 수출전선에 적신호가 켜지면서 위안화 방어에 나설 명분이 생겼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중국의 무역적자가 22년 만의 최대치를 기록하며 위안화 절상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