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태운 급발진 영상 화제… ‘이래도 인정 못해?’
2012-03-08 22:30
제조사 "문제없다"… 법원 "소비자가 하자 입증해야"<br/>매년 수십 건 발생… 피해자들만 외로운 싸움 이어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스포티지R 급발진 피해 사진. (출처= 뽐뿌 게시판) |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스포티지R 급발진 피해 사진. (출처= 뽐뿌 게시판) |
지난 6일 인터넷 카페 뽐뿌에는 올 1월 기아 스포티지R을 구매했다고 한 네티즌 ‘jotoro’가 급발진 사고를 당했다는 사연을 소개하면서 블랙박스 영상과 사고 전후 사진을 올렸다.
◆주차하던 중 갑자기… 사업소 “이상 없다”= 그는 ‘내달 출산 예정인 아내와 처가집으로 가던 중 담배를 피기 위해 서행하는 와중에 차가 튀어나갔다. 건물과 충돌 후 차는 계속 달리려고 폭주했다. 와이프와 차에서 내렸는데도 알피엠(RPM)이 올라가고 있었다’고 했다.
‘올 1월 등록해 이제 1000㎞를 뛴 스포티지R 터보 가솔린 모델로 평소엔 조용했다’고 그는 부연했다.
2분짜리 첫 영상을 보면 골목길을 가던 차가 50초 시점에 갑자기 2~3m 앞 벽을 들이받는다. 위에는 3월 2일 오후 네시경으로 나와 있다. 이어지는 1분짜리 영상에서는 운전자가 나왔음에도 머플러에서 계속 흰 연기가 나오며 계속 발진하는 걸 알 수 있다.<하단 영상 참조>
그는 ‘부딪힌 곳이 가건물이 아닌 콘크리트였다면, 사람이 있었다면…’이라며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이후 기아차 수원사업소를 찾았으나 “조사결과 차에 이상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뉴스에나 나오는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으나 막상 겪고나니 황당하고 무서울 따름’이라고 했다.
또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짓을 다 할 생각’이라며 ‘앞으로 힘들 싸움이 되겠네요’라고 했다.
이 글은 6일만에 1만9000여 건이 조회되는 한편, 블로그와 인터넷 뉴스를 통해 일파만파 퍼져나가며 8일 오후 주요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상위권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10년 이상 이어지는 급발진 사고, 해법 없나= 급발진 문제는 비단 하루이틀 된 문제가 아니다. 제조사를 가리는 문제도 아니다. 국산ㆍ수입차를 막론하고 매년 수십 건, 지난 2006년 집계 이래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급발진 사고는 1000여 건에 달한다.
지난 2010년 12월에는 BMW 7시리즈를 몰던 탤런트 김수미 씨가 급발진 사고를 경험한 후 정신병원에까지 입원했으며, 2009년 메르세데스-벤츠 마이B로 급발진 사고를 경험한 전명철(63) 씨는 급발진 피해자 모임을 만들어 수 년째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그 밖에도 인터넷 상에서 급발진 피해를 호소하는 소비자는 셀 수 없이 많다. 이들의 공통사항은 모두 자동변속 모델이라는 점 뿐이다.
급발진 문제는 해외에서도 초미의 관심사다. 지난 2009년 미국서 토요타의 리콜 여론을 촉발한 것 역시 급발진으로 추정되는 사고의 119 신고 음성이었다. 역시 토요타 뿐 아니라 대부분 자동차 제조사가 이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보상받은 전례는 없다. 현행법상 운전자가 자신의 과실이 아님은 물론, 차량의 결함까지 직접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도 파악하지 못하는 원인을 소비자가 밝히라고 하는 건 사실상 ‘포기하라’는 것과 다름 없다는 게 피해자들의 공통된 하소연이다.
◆법원 “소비자가 제품 하자 입증하라”= 한 급발진 사고에 대해 지난 2009년 법원은 1심에서 ‘(주행 중 사고의 경우) 판매사가 하자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와 주목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2심과 대법원 판결에서 뒤집혔다. ‘차에 결함이 있다고 볼 명확한 증거가 없다’며 ‘원고가 모든 것을 입증해야 한다’는 취지의 결론을 내린 것.
30년 무사고 개인택시 운전사였던 전 씨 역시 독일 다임러 본사로부터 급발진 당시 액셀레이터 페달을 밟지 않았다는 수치를 받았으나 이 역시 ‘승소’를 이끌어내진 못했다.
유일한 제조사의 배상 사례는 지난 2005년 김영란 당시 대법관의 관용차이던 현대 에쿠스가 급발진 사고였으나 이 역시 소송 이전에 제조사가 새 차로 바꿔준 것이다.
법무부는 지난해 11월 자동차 급발진 손해배상 소송 때 입증 책임을 소비자에서 제조사로 전환하는 방안이 검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책임을 피해자가 입증해야 한다’는 민법 기본원칙에 예외가 생긴다는 점, 산업계에 적잖은 부담을 준다는 점 때문에 실제 시행 가능성은 미지수다.
정부와 제조사의 외면 속에 피해자만 냉가슴을 앓으며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는 게 현실이다. 이번에 이슈가 된 영상 역시 수 많은 급발진 추정 영상 중 하나로 묻힐지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는 촉발제가 될 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