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총제 부활 논의에 재계·정부·정치권 전운
2012-01-17 17:27
(아주경제 김면수·이재영·김유경·박재홍 기자) 재계와 정부, 정치권 간에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 논의를 둘러싸고 전운이 감돌고 있다.
시기상으로 선거철을 맞아 반기업 정책이 논의되는 것은 표심을 잡기 위한 포퓰리즘이 아니냐며 재계는 불만을 드러냈다.
정치권은 세 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을 염두에 두면서 여야를 막론하고 출총제 도입에 긍정적인 반응이다.
◆재계 “투자제약·경영위축”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기업정책팀장은 17일 “많은 투자가 대기업을 통해 이뤄지는데 출총제가 부활되면 이를 제한할 것”이라며 “되레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기상으로도 출총제 부활 논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강 팀장은 “출총제 폐지에 따른 직접적인 영향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더라도 이를 폐지한 2010년 이후 투자가 많이 늘어난 게 사실”이라며 “규제 부활에 대한 논의가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단계는 아니지만 대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도 “규제가 어떤 형태로 나올지는 아직 모르지만, 부활되면 기업 경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은 분명하다”며 “선제 투자 의지를 꺾어 경영활동이 위축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아직 정식 안건으로 국회에 상정되지 않아서 구체적인 대응은 하지 않고 있지만, 반대하는 입장은 분명하다”며 “올해 큰 선거가 있어 정책 방향이 기업을 옥죄는 쪽으로 나아갈 것을 우려해왔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견을 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개별 기업은 출총제 부활 논의에 대해 입장을 내놓는 것을 꺼리고 있다. 섣불리 의견을 내놨다가 반기업 정서에 따른 불똥이 튀는 것을 우려하는 눈치다.
SK나 GS처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규제 리스크에서 벗어난 경우도 있지만 아직 삼성,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상당수 대기업이 규제 부활시 제약을 받게 된다.
삼성 측은 “기업이 제도나 정치권 이슈에 대해 입장을 내놓는 것은 위험하다”며 입장 표명을 유보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업 관계자는 “출총제 규제가 없어지면서 수치상으로 투자와 고용이 계속 늘어났지 않느냐”며 “올해도 사상최대 투자 계획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규제 부활을 논의할 게 아니라 정책적 지원 방안을 고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 출총제 도입 긍정적
정치권에서는 19대 총선이 불과 3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인 만큼 여야 가릴 것 없이 출총제 도입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단 이번 총선에서 다수당 가능성이 점쳐지는 민주통합당은 대기업의 문어발식 경영을 제한하고, 중소기업·소상공인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출총제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지난 1·15 전대를 통해 새로 출범한 지도부가 사회 양극화 해소를 당의 핵심 가치 및 총선 대비 정책 공약으로 꼽고 있어 출총제 도입 움직임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민주통합당은 당장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의를 가동시켜 출총제 도입과 고유업종 지정, 법인세 인상 등 개혁과제를 논의하고 다음달 중에 구체적인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동안 출총제 도입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던 한나라당에서도 온도 변화가 감지된다.
한나라당은 ‘기업의 기를 살려 투자, 고용을 늘리겠다’는 현 정부의 경제 정책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출총제 폐지에 찬성해 왔으나, 이대로 가다간 총선 필패를 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넓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비대위 산하 정책쇄신분과는 17일 ‘경제민주화를 위한 정책분과회의’를 열어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을 비롯해 공정거래연구소 설립, 계열사 수익부담금에 대한 법인세 부과, 국민연금 투자 제한 문제 등을 논의했다.
비대위 한 관계자는 “아직은 비대위 내 일부에서 출총제 폐지론이 나온 상황이고, 당 차원에서 정식으로 논의하고 있는 단계는 아니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집권 여당 내에서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한 직접적인 변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논의가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아직은 비대위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는 수준이지만 비대위가 실질적인 당의 지도부인 만큼 논의 차원을 벗어나 당론으로 결정될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현 정부가 규제 완화를 이유로 폐지한 출총제가 결국 대기업의 무분별한 확장을 가져왔다는 일각의 비판적 여론도 출총제 부활 움직임의 요인 중 하나로 해석된다.
◆주무부서 공정위는 ‘곤혹’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을 억제하는 출자총액제한제도가 폐지된 지 3년 만에 다시 정치권을 중심으로 공론화되고 있는 가운데 주무 부서인 공정거래위원회는 상당히 곤혹스러워하고 있는 분위기다.
실제로 공정위는 최근 민주당 새 지도부가 출총제 부활을 들고 나오자 “대기업 집단의 경제력 집중 문제를 출총제 폐지로 인한 결과로 단정 지으면 안 된다”며 출총제 부활에 대해 가시적으로 반대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또한 공정위는 지주회사 체제 전환과 사후 감시 강화 등을 통해 대기업 집단의 출자구조를 개선하는 노력이 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편 지난 2009년 출총제가 폐지된 후 재벌그룹들의 자산규모와 계열사 수는 가히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출총제가 시행되던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상위 20위 기업집단의 연평균 자산증가율은 5.46%에 불과했지만, 출총제가 완화·폐지됐던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연평균 자산증가율은 8.67%로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기업집단의 계열사 출자가 자유로워지면서 자산 총액 5조원 이상 상호출자·지급보증제한 55개 대기업집단의 수는 2012년 현재 1629개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4월 지정 이후 약 75개가 늘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