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도 힘든데 웬 문화타령? 문화바우처는 '희망의 사다리'

2012-03-12 17:05
'복권기금 문화나눔' 예산 480억.. 공연관람 도서구입비등 문화카드 인기 <br/> 저소득 문화소외층 "이런 세상도 있다니..." 55만6천명 혜택

빈센트 반고흐. 복권판매소.1882.38*52cm.  수채화

(아주경제 박현주기자) "무리지어 서 있는 사람들의 기대에 찬 표정이 인상적이어서 그들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복권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고 깊은 의미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난한 사람과 돈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더 그렇지 않겠니.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복권에 대한 환상을 갖는 것이 우리 눈에 유치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 
음식을 사는 데 썼어야 할 돈, 마지막 남은 얼마 안 되는 푼돈으로 샀을지도 모르는 복권을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그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의 고통과 쓸쓸한 노력을 생각해보렴."

1882년 10월 1일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다. 그날 스케치한 그림은 수채화로 그려졌다. 제목은 '복권 판매소'. 현재 암스테르담 빈센트 반고흐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129년이 지났어도 복권은 여전히 유효하다. 21세기 자본주의사회에서 복권은 '힘든 삶'의 진통제로 진화했다. 그림처럼 아직도 복권을 사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서고 기대감에 부풀어 대박을 꿈꾼다. 인생역전, 매번 긁고 허탕을 쳐도 또다시 '복권 판매소'를 지나치지 않는다. 안다. 1등에 당첨될 확률이 높지 않다는 것도, 그런 행운이 오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복권 한장을 부적처럼 주머니에 지갑에 품고 일주일을 견디는 이유가 무엇일까. 1000원 한장으로 살 수 있는 '희망' 때문이다. 

문화나눔 특별프로그램으로 지방문예회관에서 순회공연을 펼치고 있다.

◆'밥보다 문화!' '복권기금 문화나눔'예산 480억 지난해보다 2배↑

지난해 복권 매출액은 2조 5255억원으로 2009년과 비교해 543억원 늘었다. 올해 매출액은 로또 판매가 크게 늘면서 복권위는 올해 판매액이 3조1000억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올해 복권발행 허용한도(2조8046억 원)를 초과했다. 때문에 사행산업비난으로 복권중단 논란으로 뜨겁다.

하지만 고흐가 말했듯, "복권에 대한 환상을 갖는 것이 유치해보일 수도 있지만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해서는 안된다."

'로또'는 이탈리아어로‘행운’이라는 뜻이다. 복권은 '소외계층 복지사업'에서 마법을 부리고 있다. 50%는 당첨금 지급, 10% 사업 수수료를 떼고 40%는 공익기금으로 활용한다.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는 세상에서 복권기금은 가난한 삶에 미래를 이어주고 있다.

내년엔 성장과 삶의 질이 함께가는 공생발전이 화두다. '문화의 시대', 저소득 문화소외계층도 '밥보다 문화'가 절실하다.

'복권기금 문화나눔'이 앞장서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2004년부터 시작한 '문화나눔'은 2008년,2009년 복권기금사업 성과평가에서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복권기금사업에는 13개 기관이 22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전체 복권기금중 문화예술진흥부문 예산은 4%. 지난해는 237억, 올해는 480억원으로 예산이 배로 늘었다. 외국의 경우 영국은 기금조성액 2조5944억원중 16%인 4332억원, 캐나다는 4조2012억원중 6301억, 호주는 1조716억중 3679억을 문화예술분야에 쓴다.

문화나눔 생활문화공동체 만들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주부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이런 세상도 있다니"..문화바우처는‘희망의 사다리’

"먹고 살기도 힘든 형편에 무슨 뮤지컬이며 영화냐 했었는데, 난생처음 문화바우처를 통해 아이들과 공연을 봤어요. 앞으로도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문화체험 기회가 더 늘었으면 합니다.”

광주에 사는 문화바우처 회원 김원춘씨는 "아이들과 공연을 관람한후 뮤지컬에 관련된 책을 읽고, 상황극을 만들어 연기자처럼 책을 읽기도 하고, 엄마 아빠가 책 속의 상대역도 하며 오랜만에 즐겁고 환한 웃음꽃을 피웠다"면서 "세상 살면서 돈이 전부가 아니구나, 이런 세상도 있구나"를 깨달았다고 했다.

문화바우처(Voucher)가 저소득가정과 문화소외계층에 희망의 사다리가 되고 있다. '즐거움과 기쁨을 알게 했다"는 반응이 이어지며 일상의 행복과 삶의 여유를 찾아주고 있다. 55만6130명이 혜택을 받고 있다.

양효석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나눔본부장  "문화바우처는 아직도 끼니 걱정을 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공연 티켓을 사주겠다는 정책"이라며 "김 회원님의 말처럼 밥보다 티켓 한 장이 더 소중한 이유"라고 했다.

당장 굶는 사람도 많은데 웬 문화타령이냐고도 할 수 있다.

빈곤층을 위한 인문학 교육 프로그램인 ‘희망의 인문학’ 코스를 개발한 얼 쇼리스는 국가가 가난이나 실업구제를 위해 벌이는 복지정책에 호된 비판을 가한다. 

 이런 방식의 복지정책에는 가난한 사람들은 일반인과 다른 존재 즉 능력이 부족하거나 별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편견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

그는“가난한 사람들에게 경제적 도움보다 더 필요한 것은 중산층이 누리는 문화를 접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서민들이 복권을 구매하는 것은 한 끼 밥을 해결하거나 실업자가 작은 봉급이라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는 직장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평소에 다가설 수 없는 도시 중심에 사는 사람들(중산층 혹은 상류층) 처럼 살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다."

왜 가난한 사람들에게 문화체험의 기회를 주어야 할까?

쇼리스는 우연한 기회에 교도소를 방문해 한 여죄수에게 “왜 가난한 사람들이 존재할까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비니스 워커라는 여인이 “시내 중심가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정신적 삶이 우리에겐 없기 때문이죠”라는 대답을 듣고 깊은 충격을 받았다.

가난한 사람들은 중산층들이 흔히 접할 수 있는 연주회와 공연 전시회, 강연과 같은 ‘인문학(Humanities)’을 접하는 것 자체가 원천적으로 힘들고, 그렇기 때문에 깊이 있게 사고하는 법, 현명하게 판단하는 법을 몰라 가난한 생활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배고픈 사람에게 단순히 점심 한 끼를 대접하는 것은 빈곤을 연장시켜줄 뿐이다. 영국 문화부 장관을 지낸 테사 조엘은 "빵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빈곤에서 탈출하려는 열망을 갖게 하는 것이다. 문화예술에의 참여는 이 열망의 빈곤을 경감시켜줄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라고 했다.

문화나눔은 장애인 창작 및 표현활동지원사업에 올해 10억을 지원했다.

◆예술로 만나는 희망에너지 '복권기금 문화나눔'

복권기금 문화나눔사업은 △소외계층 문화순회,△문화바우처,△문학나눔,△전통나눔,△사랑티켓 △장애인 창작 및 표현활동 △공공박물관·미술관특별전시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 프로그램등을 지원한다.

문화나눔 사업중 문화바우처는 가장 효과가 높다. 올해는 예산 276억원을 들여 170만가구에 혜택이 돌아갔다. 지난 9월부터는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 가구의 청소년 (만 10세~19세)에게 연간 5만원의 문화카드를 발급하고 있다. 연극 뮤지컬 음악회 전시 영화등 다양한 문화예술관람료와 음반 도서구입비를 지원한다.
장애와 경제적, 심리적 요인으로 공연 관람을 어려워했던 문화소외계층에게 인기다. 34만여명이 회원이다.

한국문화예술위 문화복지부 관계자는 "문화카드는 지난해 인터넷 포인트제에서 올해 처음 카드제로 바뀌었다"며 " 11월말 현재 약 62%의 문화카드가 발급됐고 방학기간에 사용액이 많이 늘어나기 때문에 연말이 가까워지면 카드 발급률이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화나눔 홍보대사 배우 유준상이 자신이 공연하는 뮤지컬 삼총사 공연에 문화바우처 청소년회원들을 초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문화바우처 회원이 되면 해당지역 주관처가 선정한 문화예술 프로그램 중 원하는 프로그램을 선택ㆍ예매할 수 있다. 5만원 상당의 카드를 받지만 50%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티켓을 예매할 수 있어 사실상 연간 10만원 상당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또한 회원들 중 30인 이상의 단체가 1시간 이상 떨어진 공연장에서 관람을 희망하는 경우 이동차량 및 식사 편의도 제공받을 수 있다.

공연료가 할인되는 '사랑티켓'은 대학생들에게 인기다. 연극은 7000원이나 할인받을 수 있다. 24세 이하와 65세 이상이 회원으로 사용할 수 있다. 전시는 5000원이 할인된다.

'문화 순회공연'도 활기다. 2004년부터 8년째 이어지고 있다. 사회복지시설 농산어촌 임대아파트주민, 다문화가정, 교정시설등을 찾아가 매월 공연을 펼친다. 이젠 공연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 관람을 통해 삶의 희망과 용기, 감동을 나누는 시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문화나눔 '아름다운 세상' 콘서트를 열고 있는 혼성아카펠라그룹 보이쳐 리더 김민수 씨는 “많은 교도소를 방문하여 여러 공연을 하였지만 재소자들의 열렬한 반응에 깜짝 놀라곤 한다. 재소자들의 공연에 대한 집중력이 일반 공연 관객들보다 훨씬 높을 때가 많다” 며 음악을 통해 재소자들의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홍보부족으로 지자체에 따라 문화바우처 사업의 실적이 차이가 난다. 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사업추진 실적이 높은 지자체에 추가 예산 배정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면서 “지역 주관처의 역할을 확대하고 문화복지사 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화카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오광수 위원장은 "예술은 삶을 아름답게 변화시킨다"며 "문화나눔사업은 문화로 사회적 불균형을 해소한다는 정부의 목표에 맞춰 저소득층에게 공연과 전시 등 문화예술 향수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고 문화나눔과 나눔티켓과의 연계등 각종 할인 혜택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카드는 누리집(문화바우처.kr 또는 www.cvoucher.kr)이나 거주지 읍·면·동 주민센터에서 신청하면 된다. 문의 1544-7500, 1566-7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