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시장 M&A 주시장으로 떠오른다

2011-11-23 08:20

선진국 경제가 휘청거리면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아시아 지역이 M&A의 주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심화하면서 서구권의 기업들이 줄줄이 파산하는 가운데 중국을 비롯한 중동 및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이를 발판으로 삼아 적극적인 기업 인수 합병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FT)는 지난 21일 아시아의 M&A 시장을 주목했다. FT는 “올들어 11월까지 아시아 지역에서 성사된 M&A 규모가 모두 5670억 달러에 달해 지난해 같은 기간 5100억 달러 보다 무려 11%나 증가했다”면서 “올해 M&A규모는 지난해 6420억 달러를 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지난 2007년 7270억 달러에 이은 두번째를 기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올해 아시아에서 성사된 M&A는 이름만 들어도 굵직한 기업들의 합종연횡이었다. 아시아 기업간 인수·합병은 물론이고 아시아 기업이 미국 기업을 사들이기도 했다. 필리핀의 통신업체 필리핀롱디스턴스텔레폰(PLDT)이 경쟁 업체인 디지털텔레커뮤니케이션의 지분 51.55%를 24억 달러에 인수했고, 아부다비의 국영 투자회사 아바르도 말레이시아의 RHB캐피탈 지분 25%를 19억 달러에 매입했다.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테마섹이 미국 에너지기업 프락텍 지분을 36억 달러에 인수해 지배주주가 되었고,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매각한 중국건설은행 지분을 22억 달러에 사들이기도 했다.

콜린 밴필드 시티그룹 아시아 태평양 M&A부문 대표는 “글로벌 M&A 시장은 4~5년 전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가 발발하기 직전 수준으로 회복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아시아는 지난 2007년 최고 수준에 근접한 곳이 많다”고 분석했다.

아시아 시장에서 M&A가 다른 대륙보다 더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시아 지역이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 시장보다 투자 전망이 좋기 때문이다. 선진국 경제성장 전망은 앞으로 몇년간 1% 내외에 불과하지만,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은 여전히 상대적으로 높은 고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IMF는 아시아 지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6.3%로 보고 있다.

이에 반해 경제 위기로 성장률이 크게 둔화된 미국의 M&A 시장은 지난 2007년 1조6240억 달러에서 올해는 1조330억달러로 급감했다. 주요 기업들은 현금이 여전히 많지만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찾아온 극심한 경기 침체가 신규 투자를 꺼리는 풍토를 만연시켰기 때문으로 FT는 분석했다.

아시아의 상대적으로 풍부한 유동성도 이 지역의 M&A를 활발히 일으키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한 한국을 비롯해 금융위기를 겪은 아시아 나라들이 최근 글로벌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경제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M&A 투자를 불어오고 있다고 FT는 덧붙였다.

올초 지진과 원자력발전소 재난으로 큰 피해를 입은 일본의 기업들도 M&A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 일본을 방문한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일본에서 10억 달러 이상의 투자처를 찾고 있다”며 일본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일본의 올해 상반기 M&A 규모는 지난해 동기의 두 배가 넘는 3조1250억엔을 기록했다. 올해 일본 기업의 아시아 지역 M&A 가운데서는 미쓰이물산이 말레이시아의‘인테그레이티드 헬스케어’를 924억엔(약 1조2500억원)에 인수한 것이 가장 컸다.

삼성경제연구소도 최근 발표한 ‘2012년 기업환경 변화와 기업경영의 주요 이슈’에서 “기업들이 내년에는 생존경쟁이 펼쳐지는 신규 사업 영역에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진출하거나 M&A로 외부 역량을 활용하는 전략이 펼쳐질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삼성은 최근 미래 신사업분야에서 스몰딜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16일 미국 심장혈관질환 진단기기를 생산하는 넥서스(Nexus)를 인수한다고 밝혔다. 인수 주체는 삼성전자 미주법인(SEA)이며 인수 금액은 알려지지 않았다. 연내 넥서스 인수를 마무리하고 이를 의료기기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HME(Health Medical Equipment)팀에 편입할 계획이다.

LG전자도 신수종 사업에서 활발한 합종연횡을 하고 있다. 지난 8월 수처리 핵심 사업역량 확보를 위해 국내 공공 수처리 분야 주요 운영관리 전문업체인 대우엔텍을 인수했다. 대우엔텍은 공공 하수처리 시설에 대한 민간위탁 분야 전문업체다. 또 히타치플랜트테크놀로지와의 수처리 합작법인 ‘LG-히타치 워터 솔루션’을 연내 출범할 계획이다.

롯데그룹도 “M&A를 적극 검토하라”는 오너의 지시 아래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아직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롯데그룹은 중국 상하이와 싱가포르 지역 호텔을 대상으로 M&A 매물을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엔 “롯데호텔을 미국의 힐튼이나 하얏트처럼 세계적 호텔체인으로 키운다”는 오너의 구상이 담겨 있다.

그룹 계열사인 호남석유화학도 케이피케미칼과의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과거 과도한 주식매수청구비용으로 합병이 무산됐던 양사의 합병은 경제 위기로 주가가 떨어진 지금 상황이 기회인 셈이다.

2012년 한국의 보험업계에서도 광범위한 M&A가 일어날 것으로 이미 전망됐다. 업계에 따르면 보험사들의 영업손실 누적 및 모회사 경영위기, 덩치를 키워 규모의 효과를 노리는 경쟁사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에 따라 동양생명, ING생명, 에르고다음다이렉트손보를 비롯해 그린손보도 매각 또는 M&A시장에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국내 대기업들은 경제 위기 상황 속에서 인수합병 기회를 활용해 상황 반전을 노리고자 한다"면서 "
위기 상황일수록 우량기업이 저가의 매물로 나올 확률이 높기 때문에 앞으로 인수합병 바람이 더욱 거세게 불 것"이라고 전망했다.

/워싱턴(미국)= 송지영 특파원 이재영·김병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