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시대 핵심100인] <84>장즈쥔 – 중련부에서 절차탁마한 차세대 외교핵심
2011-11-04 15:00
(베이징=조용성 특파원) 장즈쥔(張志軍) 중국 외교부 상무 부부장은 올해에만 북한을 두차례 방문하며 한반도문제, 북핵문제 전면에 떠오른 인물이다. 그가 북한을 방문해 어떤 사안에 대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그가 만난 북측 인사의 면면을 볼때 상당히 깊숙한 부분까지 협의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장 부부장은 지난 2월 평양을 방문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박의춘 외무상,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을 만났다. 당시 방북에는 중국측 6자회담 차석대표인 양허우란(楊厚蘭) 한반도 및 북핵문제 전권대사가 동행했다.
이후 그는 지난 10일 리커창(李克强) 중국 국무원 상무부총리와 함께 다시 평양을 방문했다. 그는 이어 리 부총리와 함께 한국도 다녀갔다. 북한과 한국을 차례로 방문하며 양국의 외교라인과 접촉하며 모종의 메시지를 전달했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앞으로도 장즈쥔은 한반도 관련 뉴스에 자주 등장할 것으로 관측된다.
장즈쥔은 외교부 상무 부부장 겸 당조서기를 맡고 있다. 보통 국무원 부서는 부장이 당조서기를 겸임하고 있다. 하지만 외교부는 하부조직이 많고 각종 직능이 많으며, 외교부장의 해외순방이 잦기 때문에 외교부장이 외교부 내의 공산당 업무를 관장하기 버겁다. 때문에 상무 부부장이 당조서기를 맡아오고 있다. 리자오싱(李肇星), 다이빙궈(戴秉國), 왕이(王毅), 왕광야(王光亞) 등 역대 외교부 상무 부부장들도 당조서기를 겸직했다.
외교부 내 공산당 조직에서는 장즈쥔이 외교부장인 양제츠보다 명목상으로 높지만, 전체 공산당 서열로 보면 중앙위원인 양제츠가 전국대표인 장즈쥔보다 한참 위인 셈이다.
1953년2월 장쑤(江蘇)성 난퉁(南通)에서 태어난 그는 문화대혁명기간에 하방당했다가 공농병청강생 자격으로 베이징대학에 진학한다. 영어에 뛰어난 소질을 보여 1974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됐고 1975년 귀국해 중공중앙대외연락부(중련부) 7국에 배치된다.
중련부는 1951년 구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이나 북한 등 공산국가들과의 당대당 교류를 위해 출범한 기구로 국무원 소속이 아닌 공산당 소속으로 돼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서방세계와의 외교가 단절돼 있어서 공산당간의 대화창구인 중련부가 국무원 산하의 외교부보다 발언권이 강했다.
하지만 중국이 개혁개방정책을 표방한 데다 구소련이 붕괴하고 동구권의 공산체제들이 하나둘 몰락하면서 중련부의 위상은 급속히 약화됐다. 하지만 중련부의 정당간 교류기능은 아직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특히 당대당 교류가 중요한 북중관계는 아직도 중련부가 전면에 나서고 있다. 북한을 비롯한 동북아를 관장하는 기구인 중련부 2국은 북핵문제가 글로벌 이슈로 대두되면서 중국의 동북아외교를 주도하고 있다.
장즈쥔의 첫 직장인 중련부 7국은 북미지역과 오세아니아, 북유럽국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 지역에는 공산당이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제7국은 담당 섹터가 넓다. 7국은 주로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과의 관계를 관장하고 있다.
장즈쥔은 1988년 7국 처장으로 승진했으며 1991년 자신이 유학생활을 했던 영국에 대사관 1등서기관으로 파견된다. 3년후인 1994년 그는 중련부 7국 부국장으로 복귀했다. 국장으로 승진 하기 전 지방행정경험을 쌓기 위해 산둥(山東)성 쯔보시(淄博市) 부서기로 1년간 재직한 후 1997년 중련부 연구실 주임으로 컴백한다. 그리고 1년후 7국 국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2000년 그는 중련부 부부장에 오른다. 유럽통인 장즈쥔은 중련부 부부장으로서 9년 동안 근무한 후 EU와의 외교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2009년 6월 외교부로 발령받게 된다.
그는 외교부에서 유럽지역과 번역실 업무를 전담하는 부부장직을 맡게 됐다. 장즈쥔의 후임 중련부 부부장으로는 류제이(劉結一)가 발탁됐다. 이듬해 그의 직무는 대언론 창구인 신문사로 전환됐으며 그해 12월 상무 부부장으로 진급하게 된다. 외교부 상무부부장은 7명의 부부장 중 최선임자로 장관급이다. 장즈쥔이 맡던 신문사 업무는 북미대양주 지역 업무를 담당하는 추이톈카이(崔天凱) 외교부 부부장에게로 넘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