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 칼럼>제프쿤스와 한국 기업미술관의 역할
2011-04-29 23:42
김윤섭(한국미술경영연구소 소장)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
이를 두고 한편에선 몇 해 전 삼성에서 80억원 정도에 구입했다던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을 떠올리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오히려 신세계의 ‘대범한 실험’에 기대와 박수를 보내는 이도 있다. 더 나아가 이번을 계기로 한국의 미술문화 발전과 기업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것을 주문한다.
세계를 리드하는 G20 국가에서 ‘국립’ 현대미술관이 1곳뿐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할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세계 미술계에 통할만한 글로벌 아티스트의 대표작품 한 점 없는 것도 우리나라뿐일 것이다. 이는 근무자의 무능함 탓이 아니다. 돈이 문제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서울시립미술관 등 한국의 대표적인 국공립 미술관의 연간 작품수집 예산은 불과 50억원 미만이다. 이는 한국에서 최고가인 박수근 화백의 작품 1점 구입할 금액이다.
또 이번 신세계에서 구입한 제프쿤스 작품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소장하려면 예산을 6년간 꼬박 모아야 살 수 있다는 얘기다. 재밌는 것은 6년 후에도 이 작품의 가격이 300억원으로 기다려줄 지는 미지수다.
현재 세계에서 문화대국을 꿈꾸는 국가는 많다. 우리나라도 빠지지 않는다. 그러려면 대다수의 국민이 골고루 문화를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미술의 경우엔 당연히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이 많아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수학여행, 단체관람, 이벤트성 행사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미술관을 찾는 숫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런데 의아하게도 방학 때면 소위 굴지의 해외 블록퍼스트급 전시엔 수십 만 명이 몰린다.
흔히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엄청난 대여료와 보험료를 지불하고 한시적으로 빌려온 해외 명화나 모나리자처럼 현지의 이름난 미술품을 보기 위해 지출되는 외화를 따져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그럴 때마다 저런 작품들이 우리 미술관에 있다면 오히려 외국 관람객을 유치할 수도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 때도 있다.
문화대국은 단순히 국민정서로 만들어질 수 없다. 무형의 문화적 가치는 현물인 문화예술품이 있어야 기대할 수 있다. 때문에 한국이 아니라, 세계에서 통할 수 있는 예술품을 얼마나 소유하는가가 관건이다.
이번 신세계가 세계적인 빅아티스트 제프쿤스의 작품을 구입해 누구나 공유할 수 있도록 개방한 사례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된다. 과연 기업의 문화마인드가 대국민의 문화향수권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국립’ 미술관도 엄두를 못낸 일을 한 개인이 이뤄낸 격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의 미술문화 발전과 기업이 어떤 연계가 있고, 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하는 필요성이 대두된다.
점차 전문성을 앞세운 기업미술관이 증가하고 있다. 기업미술관의 경우 대개 전시 수준과 완성도가 높다. 일반 화랑에 비해 충분한 진행경비와 탄탄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경영자의 의지와 열정이다. 또한 대부분의 기업미술관 오너들은 전문가적 지식과 체계적인 경영마인드로 무장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미술관이 기업을 위한 종속적인 공간이 아니라, 모기업의 경영이념과 미래비전까지 가늠하는 ‘문화경영’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그만큼 기업 활동에 유무형으로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우선 기업이익의 사회 환원뿐만 아니라, 소비자와의 교감 채널, 차별화된 감성경영, 직원들의 감성과 창의력 신장,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아트 디렉팅, 기업의 철학과 비전의 패러다임 변화 등 이유는 너무나 다양하다.
이처럼 기업미술관의 역할은 단순히 한 기업 이익의 사회적 환원 차원을 넘어 새로운 문화형식을 만들어가는 산실이란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말로는 문화중심 시대를 맞았다고 하지만, 실제 환경은 여러 장애요소가 많다.
글로벌 시대를 리드하는 기업의 성과와 비전을 기업미술관에 옮긴다면, 한국 미술문화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문화 르네상스기를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기업미술관, 한국 미술문화 전성기의 또 다른 해답일 수 있다. 이젠 더 이상 기업과 미술의 연계를 색안경으로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업에 대한 문화중심 사회적 기여를 독려할 최적의 시기를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