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료 덤핑에 묻지마 입찰까지… 비리 행태 '천태만상'
가장 공정하게 진행돼야 할 정부 입찰이 비리로 물들고 있다.
무조건 최저가만 고집하는 지방자치단체와 일단 입찰부터 따내고 보자는 보험사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결과다.
규칙과 상도덕이 사라지고 '모럴헤저드(도덕적해이)'만 남은 지자체 입찰 현장에서 국민들의 혈세가 줄줄 새고 있다.
◆ 보험사 '고무줄' 입찰가에 지자체 '맞장구'
영등포구청과 A손해보험이 지난 1월 체결한 자동차보험 계약 중 차종과 차량가격이 허위로 적용된 건수는 무려 16건에 달한다.
차종 적용 오류 4건, 차량가격 오류 12건 등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입찰가격을 낮춘 A사는 낙찰을 받는 데 성공했다.
다른 보험사들의 항의로 문제가 불거지자 영등포구청 감사실이 조사를 벌였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당시 입찰에 참여했던 한 보험사 관계자는 "감사실에서 계약을 무효로 하라는 권고를 했지만 담당 부서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A사와의 계약을 밀어붙였다"고 전했다.
이와 반대로 보험사가 지나치게 높은 보험료를 적용해도 지자체가 이를 묵인하는 사례도 있다.
강동구청은 최근 B손해보험과 C화재로부터 기존에 납입했던 보험료 중 일부를 환급받았다.
B사의 경우 2005~2008년에 걸친 4년치 보험료 차액을, C사로부터는 지난해 보험료 차액을 돌려받았다.
입찰 당시 보험료가 잘못 산출됐지만 구청 측이 이를 그대로 수용했다가 뒤늦게 문제가 불거지자 보험료 환급을 요청한 것이다.
강동구청 관계자는 "해당 보험사들이 입찰에 참여하면서 차종을 잘못 적용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구청에도 책임이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지난 2008년에는 용산구청도 같은 이유로 A사로부터 보험료 차액을 환급받았다.
대형 손해보험사에서 입찰을 담당하고 있는 한 직원은 "입찰에 참여하며 제시한 보험료 총액과 나중에 제출하는 견적서 금액이 다른 경우는 허다하다"며 "대부분 입찰가격을 낮춰서 참여하지만 간혹 보험료를 높여 부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 법도 규정도 무시, 구멍 뚫린 입찰시스템
안성시설관리공단은 지난달 차량 및 장비 보험 입찰을 실시했지만 결국 유찰됐다. 최종 낙찰된 D손해보험의 입찰가격과 보험료 견적서 총액이 달랐기 때문이다.
공단 측은 지방계약법 19조 2항(낙찰자와 계약을 할 수 없을 때 재공고를 할 수 있다)을 근거로 재입찰 공고를 내기로 했다. 그러나 입찰가격을 정당하게 제시한 C사가 이의를 제기해 현재 분쟁이 진행 중이다.
공단 측은 행정안전부에 유권해석을 의뢰했으나 행안부는 입찰 자체가 지방계약법이 명시한대로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답변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방계약법은 물품에 대해서만 최저낙찰제를 적용하도록 돼 있는데 보험은 이 같은 조건을 충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입찰 여부를 놓고 당사자 간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공단 측은 흥국화재를 통해 만기 2주인 단기 책임보험에 가입했다. 책임보험은 일반 자동차보험보다 보험료가 20% 이상 비싸다. 애꿎은 혈세만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 입찰을 관리하는 보험사 내부시스템도 허술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7월 실시된 종로구청 차량 보험 가입 입찰에는 D사 직원이 본사 승인도 없이 입찰에 참여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D사는 "해당 직원이 실적 욕심 때문에 무리하게 입찰에 참여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함께 입찰에 나섰던 동부화재를 밀어주기 위해 들러리 역할을 자임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자체가 실시하는 보험 입찰과 관련된 민원이 많아 사례가 적발될 때마다 금융감독원에 보험모집질서 위반으로 신고하고 있지만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며 "문제가 드러난 지자체에 대해서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통보하겠다"고 말했다.
이재호 임명찬 이수경 기자 gggtttppp@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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