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냉연 가공 업체, 원자재 가격 상승·수요 감소 이중고에 '울상'
서울 용두동 철강 유통 단지내 가공업체들. 평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문이 닫힌 업체가 군데군데 보인다. |
(아주경제 이정화·조영빈 기자) "원자재 가격은 매달 오르는데 제품 가격은 그대로니 힘들 수 밖에. 죽지 못 해 하고 있는 거야."
서울 용두동 철강 유통 단지내 한 가공업체에서 만난 A(65세)씨는 "수 억원이 넘는 가공 기계를 놀린 지 이미 오래"라며 "한창 좋을 때는 9명까지 일했는데 지금은 늙은이 둘이서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하고 있다"고 푸념한다.
100여 곳의 냉연 가공·유통 업체가 밀집해 있는 서울 용두동내 단지내 업체들 대부분이 비슷한 상황이다. 한창 바쁘게 돌아가야 할 강판 가공 기계들은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 멈춰 서 있다. 평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20여평 남짓한 작업장에 겨우 한·두 명이 작업을 하고 있을 뿐이다. 작업을 하지 않은지 오래 된 듯 먼지가 잔뜩 낀 채 문이 닫힌 업체도 군데군데 보인다.
30년째 냉연을 가공해 자동차 업체에 공급하고 있는 박문홍씨도 지금 상황은 견뎌내기 힘들다고 말한다.
박씨는 "불과 두 달여 만에 냉연 가격이 t당 5~6만원 올랐다"며 "가격이 오르기 전에는 한 달에 1000t가량을 들여왔지만 가격이 오른 후에는 제품 가격을 맞출 수 없어 지난 달에는 700t 정도밖에 들여오지 못 했다"고 말했다.
이어 "직원 월급 주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한숨짓는다.
올해 초 t당 77만원에 공급되던 냉연강판(CR,1mm 기준)이 지금은 20만원 오른 97만원에 공급되고 있다. 원료가가 올랐다고 이를 제품가에 그대로 반영할 수도 없다.
제품공급가를 올리면 수요업체들이 교체해야 할 제품도 교체하지 않고 좀 더 쓰고, 공사 현장은 공정을 늦춰 수급을 조절해 판매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 철강업체에서 18년 동안 경리일을 맡아온 조영화(50세)씨는 "사실상 지금은 마진이 없는 상태"라며 "위에서 원료 단가를 올린 채로 내려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한다.
대(代)를 이어 철판·스텐레스판 가공업체를 운영하는 김모(43세)씨가 체감하는 상황도 같다.
김씨는 "들여오는 원재료 가격은 오르는데 물건을 주문하는 사람이 제시하는 가격에 맞춰야 하니 1mm를 써야 할 걸 0.8mm를 쓸 수밖에 없다"며 "그러다보니 제품 질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같은 악순환의 문제점으로 최근 몇 년간 끊임없이 오른 원자재 가격도 문제지만 여러 차례를 거쳐야 하는 유통 구조의 문제점도 지적한다.
김씨는 "철강업체에서 만들어진 원자재가 우리한테 오기까지 4~5차례의 유통 업체를 거치며 마진이 50% 정도가 붙는다"며 "대기업은 물건만 만들고 유통업체에 니네가 알아서 팔라고 맡겨 놓을 게 아니라 유통 구조 개선에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에 대한 불만도 털어놓았다.
김씨는 "정부가 상생, 상생하지만 아직까지 멀었다"며 "자유경쟁에만 맡겨 놓을게 아니라 중소기업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 자체를 마련하는 등 정부가 적극적인 개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문홍씨도 "정부가 4대강 사업등에는 돈을 쓰면서 일반 제조업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듯 하다"며 "경기가 풀리기를 기다릴 수밖에 우리가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jhlee@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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