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 칼럼]재외국민 1000만 시대를 대비하자
2010-10-08 16:22
▲박완규 (월드코리안신문 편집국장) | ||
중국 화교는 세계 어느 곳에 가더라도 쉽게 볼 수 있고, 어느 지역에서든 그 곳의 상권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의 저력을 이들 화교에서 가늠할 수 있음이다.
사학자들은 이들 중국 화교들이 세계 각지로 이주하기 시작한 것이 대체로 남송(南宋) 시대인 12세기부터로 추정하고 있다. 장사를 하기 위해 해외로 나간 경우도 있고, 흉년이 들어 먹고 살기 어려워지자 생존을 위해 떠나기도 했을 터이다.
화교의 해외이민사에서 큰 전환점을 맞은 계기는 명대(明代) 초에 시행된 해금 정책이다. 명 조정은 허락없이 바다로 나간 자들을 사형에 처할 정도로 민간인의 해외 진출을 강력하게 억압하려 했다.
그러나 정부 정책이 그렇다고 한들 몰래 해외로 빠져나간 사람들은 늘어가기만 했고, 계속해서 일본, 필리핀, 자바 등지에 거류지를 형성시켰다. 그런데 모국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나니 화교들은 늘 불안정하고 위험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필리핀의 경우 16~17세기에 3만여명의 화교들이 마닐라에서 집단 학살을 당하는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기도 했다.
이런 처지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친족들 간의 끈끈한 상호 협력체계를 구축했고, 이를 활용해서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화교들은 비록 소수 인종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정착한 사회에서 막강한 경제력을 행사하곤 한다. 예컨대 인도네시아에서는 화교가 인구의 4%에 불과하지만 전체 경제 부문의 80%를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전 세계에서 화교들이 운용하는 자본은 적게 잡아도 2조 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시계 2010년의 우리 한인 교민은 어떤가? 지구촌 곳곳에 퍼져 살아가는 한인들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그리고 우리 한인 교민들이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얼마만큼인지, 또 중국 화교와 비교해 보면 어떨지 사뭇 궁금하다.
재외동포재단에 따르면 현재 재외 교민과 동포의 수는 191개국에 750만여명으로 추정된다. 이는 20년 전의 7배가 넘는 수치다. 우리나라 역시 조선조 말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근대화를 이루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고 해외로 진출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때 전쟁터로 강제 징용되었다가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돌아오지 못하고 현지에 정착한 동포들, 6.25동란을 치르며 피폐해진 가난의 멍에를 벗어나고자 60~70년대 조국을 떠났던 지금의 교포1세대를 제외하고는, 지난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가 되기 전까지 여권을 발급받는 것조차 어려웠었다.
그러나 어느덧 이제 재외동포 1000만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예의 많은 한인들이 해외 생활에 정착을 위해 땀 흘리며 노력하던 개척기를 지나 지금은 국제사회의 정치와 경제,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서서히 그 영향력을 넓혀나가고 있다. 우리 민족의 우수성과 저력을 생각할 때 재외동포들은 곧 중국 화교에 버금가는 힘을 창출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요즘 세계 경제가 어렵고 우리 경제도 영향을 받고 있기에 한인들의 해외진출이 주춤하고 있지만 내년부터 다시 증가추세로 돌아서면서 곧 재외동포 1000만 시대가 올 것임을 예측하게 된다.
아직은 교포를 만나기도 힘들었던 20여년 전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가 떠오른다. 마침 남태평양 연안 섬나라들의 축제가 열렸는데 거기서 태권도 시연이 열리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더구나 그들을 지도하는 10여명의 사범들이 모두 한국인이라는 게 꿈만 같았다.
통가와 사모아는 물론 니우에(Niue), 투발루(Tuvalu), 키리바시(Kiribati), 토켈라우(Tokelau) 등 단어조차 생소한 섬나라에 이미 진출해 있는 그들 불굴의 개척정신에 절로 경외심이 들었다.
이제는 수 십 년에 걸친 인적∙물적 교류의 확산으로 인해 지구촌 어디를 가도 한인과 동포들을 쉽게 만날 수 있고 어느 나라에서도 한국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현지 주류사회의 일원으로서 정치 경제의 전면에 나서고도 있다.
재외동포 1000만 시대를 내다보며 우리 교민들이 해외에 살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또 우리가 이루어가야 할 지향점이 어딘지를 화교의 이민사를 교사로 삼아 범 대의적이자 대승적 차원의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