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 '신의 영역' 넘나드는 생명공학의 변질

2010-10-07 15:45
이준정 미래탐험연구소장·포스텍 겸임교수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는 인간의 난자와 정자를 체외에서 인공수정시켜 자궁에 이식시키는 기술을 개발해 불임 부부의 아기 탄생을 가능케 한 영국 케임브리지대 생리학자 로버트 에드워즈(85) 박사가 선정됐다.

30여년 전 세계 최초의 시험관 아기가 탄생했을 때만 해도 인위적인 생명조작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가 크게 제기됐지만, 지금은 일부 종교계를 제외하고는 반대론자가 거의 없고 시험관 아기가 건강함이 입증됐다.

에드워즈 박사의 이 업적은 현대 의학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음은 물론 생명의 본질을 신의 영역에서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내린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종교계에서 바라보는 생명의 본질은 단백질 분자들의 결합체이기 전에 영적인 존재로, 생명은 조작하여 만드는 대상이 아니라 신(지적설계자)이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과학의 발달은 생명의 본질을 인간이 조작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었다. 이미 생명의 탄생은 DNA 결합에 의해 결정되며 생명이 유지되는 에너지는 ATP라는 점이 밝혀졌다. DNA 분자 구조는 모든 생명체에 공통으로 적용되고 생물이나 동물이나 ATP에 의해 성장하거나 움직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 동물의 유전자를 복제하여 복제 생명을 탄생시키고 세포핵을 다른 세포에 이식시켜 다른 종류의 박테리아로 변환시키는 일도 가능하게 됐다. 이론적으로는 어느 생물의 DNA를 조작하여 다른 종(種)의 생물로 변환시킬 수도 있다. 생명을 본질을 탐구하여 발견하던 생물학이 이젠 생명의 본질을 이용하여 다른 생명체나 물질을 만들어 내는 응용과학인 생명공학으로 변했다.

생명과학자들은 생명의 가장 기본 요소인 유전자를 분석하고 서열을 해석하는 연구를 통해 생명체들의 본질적 차이를 알게 되었다. 유전자 지도를 디지털화 하고 유전자를 조작할 수 있도록 염색체를 합성하는 방안도 모색되고 있다. 만약 인간이 염색체를 합성할 수 있다면 전자제품과 같이 염색체를 조립하여 단백질을 만들고 이를 이용해 생명체를 제작할 수 있게 된다. 염색체란 일종의 불활성 화학물질인데 화학적으로 이 거대한 염색체 분자를 만들고 활성화 시키는 기술이 생명체 제작의 핵심이다.

인간게놈지도를 완성한 유전학자로 널리 알려진 크레이그 벤터 박사는 생명을 합성하는 기술을 개발해 온 선구자다. 그는 최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인류 최초로 유전자 조작만으로 인공세포를 창조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발표했다.

그는 '미코플라스마 미코이데스'라는 박테리아의 염색체 하나를 아주 간단한 구조를 지닌 다른 종류의 박테리아에 주입시킨 결과 후자가 전자와 똑같은 모양과 활동을 보이는 걸 확인했다. 한 박테리아의 유전구조를 다른 박테리아의 DNA로 대체시켜서 한 생명체를 다른 종류의 생명체로 전환시킨 것이다. 이 성과는 세상에 없던 생명체를 새롭게 만드는 생명체 합성과는 아직은 거리가 있지만 만약 인간이 염색체를 설계하여 만들 수만 있다면 이를 세포에 이식하여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전혀 새로운 생명체로 만들 수 있음을 실험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사실 생명합성 기술의 응용분야는 무궁무진하다. 만약 생명합성기술을 산업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자연계의 모든 유전자의 기능을 추출하고 특성별로 분류하고 표준화한다면 세포합성을 통해 인류가 필요로 하는 연료, 약품, 센서, 신소재 그리고 생명체까지도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게 된다.

생명체 인공합성 이론과 별개로 첨단 컴퓨터 기술을 이용, 두뇌 의식을 다운로드하여 의식을 복제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주장도 등장했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2040년 경이 되면 인간의 문명을 모두 연산 플랫폼 즉 컴퓨터에 옮길 수 있게 될 것이며 이 비생물학적 컴퓨터의 지능은 인간의 지능보다 수십억 배 유능한 수준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이 만든 기계가 마침내 스스로의 지능을 장악하고 그 한계를 뛰어넘는 방법까지 알아내게 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인간의 뇌는 컴퓨터의 비생물학적 지능과 융합하여 놀라운 능력을 갖게 될 것이고 언젠가는 비생물학적 지능이 인간의 생물학적 지능을 압도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날이 오면 인간의 두뇌 활동이 생물학적 의식을 기반으로 하는 것인지 비생물학적 의식을 기반으로 하는 것인지 헷갈리게 될 것이다.

인간의 가치판단이 두뇌의식에 의한 것인지 기계의 판단에 의한 것인지를 가리는 일은 생명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가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것이다. 머잖은 미래에 인간이 생물학적 두뇌의식에 기반을 둔 자율생명체인지 아니면 컴퓨터의 판단을 추종하는 인조기계인지에 대해 논란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명의 본질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만드는 과학의 발달이 자칫 생명의 절대성과 고유성, 존엄성을 훼손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과학의 본질은 인류의 건강과 복지를 확대하는 것이다. 생명공학은 생명을 멋대로 만들고 분해하기 위한 학문이 아니며, 첨단 컴퓨터 기술은 인간의 뇌를 기계부품처럼 조작하려는 욕망의 산물이 아니다. 노벨상도 인간생명의 본질을 인공적으로 조작하거나 인조인간 세상을 앞당기는데 기여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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